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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트 생의 서사와 그의 연습곡

리스트의 가족은 1822년 봄에 빈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리스트는 그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게 될 스승, 카를 체르니(Carl Czerny)를 만난다. 체르니는 부모의 집에 거주하며 하루에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 12시간이나 레슨을 하는 강행군을 1836년 레슨을 완전히 그만 둘 때까지 20년동안이나 이런 생활을 이어나갔다. 체르니는 바쁜 와중에도 소나타, 교향곡, 서곡, 협주곡, 실내악곡 등을 포함한 수천곡에 달하는 작품을 완성해냈으며, 여전히 그의 연습곡은 전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피아노 교본의 위치를 유지하고 있다. 현재 체르니의 위상은 베토벤의 제자, 혹은 수많은 연습곡집의 저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지만 현대 피아니스트의 계보를 따라 올라가면 체르니를 빼놓고 이야기 할 수 없을정도로 피아니스트사에 있어서는 중요한 인물이다.
체르니는 리스트에게 수많은 연습곡을 연습시켰으며 특히 처음 몇달간은 모든 조성의 음계를 정확한 손가락 번호로 연습하도록 하였다. 기본이 잡혀가자 체르니는 리스트가 클레멘티의 소나타와 훔멜, 리스, 모셸레스, 베토벤, 바흐의 작품을 연습하도록 하였다. 체르니는 리스트가 이러한 곡들을 최대한 빠르게 배우도록 하였고, 이러한 노력의 결과물로 리스트는 빈의 악보상 사이에서 무엇이든 초견으로 연주하는 소년으로 유명해졌다. 당시 빈의 큰 악보 가게는 손님이 악보를 사기 전에 잠깐 시연 해 볼 수 있도록 악기를 가져다 놓았는데, 어느날 계속해서 어려운 곡을 찾는 리스트에 지친 점원은 매우 어렵다고 알려진 훔멜의 새 나단조 협주곡의 악보를 보면대에 올려놨다. 점원에게는 분한 일이었겠지만, 리스트는 그 협주곡을 초견으로 연주해냈다고 한다.
이렇게 경탄할만한 초견 실력과 곡을 익히는 속도는 리스트의 연주생활에 크나큰 보탬이 되었다. 1841-2년 베를린 리사이틀에서 리스트는 10주 동안 21번의 연주회를 열었고, 총 80 작품을 선보이며 그중 50 작품은 암보로 연주했다. 리스트가 곡을 익히는 속도가 상상할수 없을 만큼 빨랐기에 가능한 일이었는데, 다음의 일화에서 그가 곡을 얼마나 빨리 익혔는지 살펴볼 수 있다. 1839년 12월, 리스트에게 베토벤의 협주곡 3번을 연주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는데, 그당시 리스트는 그 곡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24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리스트는 즉흥 카덴차와 함께 대중 앞에서 협주곡을 연주하였다고 전해진다.
빈에서 살리에리와 체르니에게 가르침을 받던 리스트는 체르니와의 레슨이 마무리 된 후 빈을 떠나 1823년 12월에 파리로 이동했다. 파리로 도착한 다음날 리스트는 자신의 아버지를 따라 파리 음악원에 방문했다. 그러나 당시 음악원의 원장이던 케루비니는 규정상 외국인을 받을 수 없다 이야기하며 리스트의 입학을 거절하였다. 입학이 거절 당한 이후 리스트의 아버지는 파리에서 리스트에게 이론과 작곡을 가르칠 수 있는 선생을 찾아다녔고 안토닌 라이하 (Antonin Reicha)와 페르디난도 파에르 (Ferdinando Paer), 두 명의 선생으로 결정한다. 파리 음악원에서 공부하려던 시도는 좌절되었지만 도착한지 얼마 되지 않아 리스트는 오늘날의 스타인웨이 아티스트와 같은 이른바 ‘에라르 아티스트’가 되었으며 이듬해 3월까지 적어도 38회 이상의 공연을 하였다. 이어 1824년을 시작으로 1827년까지 세번이나 영국에서 초청 연주회가 잇따랐다.
초절기교 연습곡의 모태가 된 12개의 연습곡(Études en douze exercises, S. 136)은 이 시기에 쓰였다. 리스트는 1855년 쓴 편지에서 이 곡을 자신이 13살이던 1824년에 이 연습곡을 작곡하기 시작했다 이야기했지만, 1874년에는 이 연습곡을 1827년에 마르세유에서 작곡했다고도 이야기 했기 때문에 정확한 작곡년도는 알 수 없다. 심지어 정확한 출간연도조차도 의문스럽지만 이 연습곡이 1826년 리스트가 같이 듀엣을 연주하곤 했던 리디 가렐라 (Lydie Garella)에게 헌정 되었다는 점을 토대로 그해에 출간 되었을 것이라 추정한다. 프랑스에서 처음 출간 되었을 당시 이 곡에는 작품번호 6이 부여되었으나, 이후 독일에서 출간될때는 작품번호 1로 출판되었다. 12개의 연습곡은 비록 미숙한 부분은 많으나 이후 초절기교 연습곡까지 이어지는 대부분의 원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흥미를 자아낸다.
프랑스 초판 악보에서 주목 해야 할 점은 이곡이 12개(douze)의 연습곡이 아닌 모든 조성에 의한(dans tous les Tons Majeurs et Mineurs) 48개(quarante-huit)의 연습곡으로 출간이 되었다는 것이다. 리스트는 다장조와 나란한 조인 가단조부터 시작해 플랫을 하나씩 늘려가며 샵을 사용하는 조성을 거쳐 마치 바흐의 평균율 (평균율의 제목은 오역이다. 원래의 뜻은 모든 조성을 사용할 수 있도록 조율된 피아노를 위한 곡집이다)처럼 모든 조성을 위한 두 개의 모음곡을 작곡하려는 계획이었으나, 이는 실현되지 않고 마지막 판본까지 12개로 남는다. 그러나 이 모든 조성을 아우르려던 계획은 꽤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리스트는 1837년 자신의 어린시절 연습곡을 개정하면서 24개의 대 연습곡(24 Grandes Études, S. 137)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이탈리아 초판 악보에 따르면 총 네 권으로 나뉘어 출간 될 예정이었으나 12곡만 두 권으로 나뉘어 출판되었다. 적어도 이때까지 리스트는 (개수는 줄었지만) 모든 조성을 아우르려던 계획을 가지고 있었던셈이다. 또한 13번째 연습곡으로 쓰려고 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미완성 자필 악보도 발견되어 2003년 영국 리스트 협회를 통해 출간되었다. 리스트는 1838년 이 곡을 완성하여 지인에게 선물했지만 출판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리스트는 일생에 걸쳐 자신의 작품을 계속해서 수정해나갔다. 가끔은 하나의 곡이 네 개 이상의 판이 존재하기도 한다. 일명 단테 소나타라고 불리는 순례의 해 2년 이탈리아 중 소나타풍 환상곡 단테를 읽고의 경우 분실된 첫번째 판을 제외해도 총 네 개의 판이 전해진다. 초절기교 연습곡 역시 3개의 서로 다른 판이 약 30년에 걸쳐서 출판 되었다. 이러한 개정은 작게는 몇개의 패시지 부터 크게는 곡의 구조까지 다양한 범위에서 이루어졌다.
파리에 콜레라가 한창 창궐하던 1832년 4월, 파가니니는 파리의 오페라 극장에서 자선 음악회를 개최했다. 리스트는 이 연주회에서 파가니니의 연주를 듣고 굉장한 충격에 빠졌다. “2주내내 내 마음과 손은 마치 영혼을 잃은 것 같았어. 호메로스, 성서, 플라토, 로크, 바이런, 위고, 라마르틴, 샤토브리앙, 베토벤, 바흐, 훔멜, 모차르트, 베버와 함께 있었지. 이걸 모두 공부하고, 그들에 대해 사색하고, 분노에 가득차 그들을 탐독했지. 그러는동안 나는 하루에 네다섯시간동안 (3도, 6도, 옥타브, 트레몰로, 연타, 카덴차 등의) 손가락 연습을 하고 있어.” 리스트가 제자인 피에르 울프에게 보낸 편지에서 리스트가 파가니니에게 받았던 충격을 엿볼수 있다.
1835년 리스트는 페르디난트 힐러(Ferdinand Hiller)에게 1837년 봄까지 24개의 대 연습곡(24 Grandes Études, S. 137)을 포함한 세 개의 곡집을 완성시키길 바란다고 편지를 썼다. 또한 다음해 자신의 어머니에게 쓴 편지에 (어린 시절 출판 되었던) 자신의 연습곡의 출판본이나 자필 악보를 찾아달라고 요청하였다. 하지만 대 연습곡이 실제로 작곡되기 시작한것은 그 이듬해인 1837년 가을로, 10월이 되어서야 완성되었다. 앞서 이야기한대로 실제로 완성된 것은 12곡뿐이지만 1838년 출간 당시의 제목은 24개의 대 연습곡이었다. 1838년 9월, 리스트는 새로운 세트의 연습곡을 작곡하기 시작했으나 미완성에 그쳤다. 왜 24개를 작곡하려는 계획을 버렸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음악학자 크리스티안 우베르(Christian Ubber)은 파가니니 연습곡의 초판본인 파가니니에 의한 초절기교 연습곡(Études d’exécution transcendante d’après Paganini, S. 140)의 작곡을 시작했기 때문일 것이라 주장했다.
이번 개정으로 이 연습곡집은 어린 시절의 습작에서 벗어나 하나의 거대한 작품으로 탄생하게 되었다. 이후 개정판과 비교했을때는 기교적인 모습이 더 두드러지게 나타날지 모르나 실제로는 음악적인 요소 또한 모두 갖추고 있었다. 이전의 작품 거의 모두가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 하였지만, 12개의 연습곡 중 11번은 이번 개정판에 포함되지 않았다. 정확히 왜 리스트가 11번째 연습곡을 버렸는지는 알 수 없으나, 1988년 프랑크 리오니는 리스트의 곡이 크라머의 곡과 너무 유사하기 때문에 버렸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정확한 이유가 무엇이든 이 주제는 리스트의 그 어떤 작품에서도 다시 등장하지 않는다.
빠진 11번 대신 리스트는 7번 내림 마장조를 11번의 조성에 맞게 내림 라장조로 전조시켜 이동하였으며, 7번의 공백은 초기 작품 중 하나인 로시니와 스폰티니의 주제에 의한 화려한 즉흥곡(Impromptu brillant sur des thèmes de Rossini et Spontini, Op. 3/S. 150)의 모티브를 이용해 채워넣었다.
비록 1839년 슐레징어 판의 8번에는 존 밀턴의 <실낙원>에서 등장하는 복마전 혹은 사탄의 궁전인 판데모니움(Pandæmonium)이라는 제목이 달려있었다. 하지만 이 제목은 하슬링어 판과 이후의 초절기교 연습곡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8번는 달리 1838년에 편지에서 전주-연습곡(Preludio-Studio)의 언급으로 미루어볼때 연습곡 1번의 성격은 이미 작곡 단계에서도 확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대 연습곡의 1번의 자필원고에서 역시 전주곡이라는 제목을 찾아볼 수 있다.
대 연습곡 전체를 개정하기 전, 리스트는 4번을 따로 개정하여 마제파(Mazeppa, S. 138)라는 제목을 붙였다. 리스트가 정확히 언제 마제파를 작곡했는지는 확실치 않으나, 피터 라베(Peter Raabe)가 제시한 1840년이 제일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라베는 이 날짜에 대해서 아무런 근거를 대지 않았기 때문에 음악학자 에른스트 부르거(Ernst Burger)는 슈레징어에서 마제파가 출판 된 1847년에 작곡 했을 것이라 주장했다. 하지만 음악학자 짐 삼손(Jim Samson)이 주장한대로 이미 1839년 (혹은 40년)에 리스트가 슈레징어에게 “마제파의 전주곡을 쓸 수 있게 나에게 오선지를 보내”달라고 요청했던 것으로 미루어보아 이 곡의 실제 작곡 연도는 1840년쯤이라 추정한다. 리스트는 빅토르 위고(Victor Hugo)의 시에 맞추어 서주를 추가하고 마지막 부분을 다듬었고, 그렇게 완성된 마제파를 빅토르 위고에게 헌정했다.
리스트는 오랫동안 교제하며 세 명의 아이를 낳았던 마리 다구(Marie d’Agoult)와 결별 후, 카롤리네 폰 자인-비트겐슈타인(Carolyne von Sayn-Wittgenstein)과 1848년 바이마르에 정착생활을 시작했다. 이미 1년전 리스트는 9월에 수익을 위한 마지막 공개 연주회를 마쳤고 피아니스트로써의 삶의 종지부를 찍었다. (통념과는 다르게 리스트는 사실상 십수년에 지나지 않은 짧은 기간동안만 전문 피아니스트로 활동하였다. 과연 오늘날 그 누가 30대 후반에 은퇴를 선언하겠는가!) 바이마르에 정착한 리스트는 작곡, 지휘, 후학양성 등 다방면에서 활약하였다. 오늘날 많이 연주하는 (소위 말하는 진지한) 리스트의 곡들은 대부분 이 시기에 완성 되었다.
1850년 무렵 리스트는 자신의 연습곡을 다시 개정하려는 계획을 세웠고, 개정 이후에 이전판이 팔리는 것을 막기위해 대 연습곡을 출간하던 하슬링어에 연락해 저작권을 다시 돌려줄 것을 요청했다. 요청이 받아들여지자 1851년 부터 리스트는 연습곡의 개정작업에 돌입했다. 리스트는 대 연습곡의 악보에 새로 쓴 내용을 덧붙이거나 기존의 내용을 삭제하는 형식으로 개정을 진행하였다. 이때 기존의 내용과 차이가 많이 나는 곡의 경우에는 전체가 새로 쓰이기도 하였다. 1851년 4월 2일, 리스트는 바트 아일젠에서 개정 작업을 마쳤다. 이렇게 완성된 곡의 제목은 본디 비르투오조 연습곡(Virtuosen Studien)이었으나 곧 생각을 바꾸어 초절기교 연습곡(Études d’exécution transcendante, S. 139)로 명명한다. 12곡 중 2번과 10번을 제외한 10곡에 제목이 붙었으며, 대 연습곡과 마찬가지로 그의 스승이었던 체르니에게 헌정되었다. 12곡의 제목은 다음과 같다.
1.
전주곡 Preludio
2.
1.
풍경 Paysage
2.
마제파 Mazeppa
3.
도깨비불 Feux Follets
4.
환영 Vision
5.
영웅 Eroica
6.
와일드 헌트 Wilde Jagd
7.
회상 Ricordanza
10.
1.
저녁의 선율 Harmonies du soir
2.
눈보라 Chasse-neige
3.
리스트 전기 작가 알란 워커(Alan Walker)는 리스트의 이런 제목은 그저 당대의 관습을 따랐을 뿐, 리스트가 자신의 연습곡에 엄청난 표제적 성격을 부여한 것은 아니라고 하였다. 그러나 몇몇 작품의 경우 이미 대 연습곡에서 어느정도 작품의 심상이 드러났고, 개정으로 이를 더 공고히 한 것을 볼때 각각의 제목을 단순히 당대의 관습으로 취급하기에는 무리가 있어보인다.
사실 리스트는 피아니스트로서 활동 할 때 초절기교 연습곡의 전신인 대 연습곡 전체를 한번에 연주한 적은 없으며, 초절기교 연습곡 또한 한번에 연주 되기를 기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초절기교 연습곡은 그 자체로 관객들에겐 매력적인 프로그램이며 피아니스트에게는 하나의 도전과도 같다. 2016년 졸업 연주회에서 전체를 연주한 이후 처음으로 다시 곡 전체를 연주하는 것인데, 여전히 부담스러운 곡들이지만 다시 공부하면서 당시에는 놓쳤던 부분들을 새롭게 발견하는 경우가 많아 재미있게 준비할 수 있었다.
글 김민규
김민규, ARTIST NO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