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 6일 오후 11시 00분
서예에 입문한 날로부터 꼬박 십년이 되던 해가 벌써 재작년이다. 목요일 오후 세시, 직장이 여러번 바뀔 동안에도 한결같이 스승님의 화실로 발길을 이끌던 시간. “그림은 직업이 되기에는 돈이 안되잖아. 그냥 계속 취미로 해.” 부정할 수 없는 말이었지만 마음에서부터 흘러나와 붓의 끝으로 전달되는 표현의 소망을 담기에 “취미”라는 말은 썰렁해서 받아 치고 싶지 않은 농담만큼이나 아무 온도도 느껴지지 않는 단어였다. 내 마음과 시간을 들여 나의 존재를 확인하는 방법은 붓의 끝에 있었다.
1.
초록달1(왼쪽), 한지에 수묵채색 및 아크릴판, 60x60x6cm, 2022
2.
초록달2(오른쪽), 한지에 수묵채색 및 아크릴판, 60x60x6cm, 2022
선생님들의 화풍을 그대로 따라하며 매난국죽을 치고, 글씨를 쓰며 간간이 미술대전에 나가 입선작을 늘리는 것이 열망의 갈증을 달래는 일이었다. 입선을 하면 받은 상의 등수에 따라 점수를 받게 되는데 이 점수가 모여 일정 점수 이상이 되면 초대작가라는 타이틀을 얻을 수 있었다. 마치 성적이 좋아야 학생의 도리를 다 하는 것 인줄 알았던 십대시절처럼 나는 “초대작가”타이틀이라는 우물에 빠져있었다.
초심을 잃은 것이었다. 그것은 내가 아닌 스승님이 원하던 타이틀이었고, 무형에 가까운 형태로 나를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를 무시하는 것이었으며, 내 사고와 예술을 일반화시켜 “삶”의 생기를 떨어뜨리는 과정이었다. 어긋난 방향으로서의 분투는 나를 소진시켰고 붓질은 의미를 잃어 한 획도 긋지 못했다.
빨강참외, 순지에 수묵채색, 70x130cm, 2022
억지로 붓을 들고 있어도 먹물 한방울 묻히지 못한지 몇 달이 되었던가. 마음을 잡고 다시 화실에 나갔지만, 더 이상 스승님의 그림과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로부터 파생된 인간관계, 작품을 추구하는 방법 등 수년동안 문하생으로 들어가 생활했던 모든 환경이 거북해졌다. 갑자기 한 순간에 일어난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진로를 찾으며 온갖 것을 시작하고 그만두던 나에게는 정착지가 필요했다. 그림을 한다는 특수성과 신비성, 특정 누군가의 문하생 생활 – 그 단단한 울타리에서 그림을 그려간다는 소속감을 잃고 싶지 않아 스스로 소속 될 것을 강요했던 것은 아닐까. 마치 그곳을 벗어나면 그림 그릴 발판이 와르르 무너져 내릴 것이라 착각하며, 겁먹은 조랑말처럼 지냈다.
발판을 무너뜨려야 함을 직감했다. 더 이상 이 불필요한 상황유지에 에너지를 낭비하면 정말 그림을 그릴 의지조차 없어질 것 같았다.그림을 하고싶다는 마음만큼은 진짜였음에 안도하며 화실에서 도망쳤다. 내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절박함에 온 신심이 범벅이 되어 그곳에서 도망쳤다.
글 유정 / 편집 이지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