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노트
슬픔의 호르메시스(hormesis)
이른 아침 습관처럼 작업실 가서 커피를 내리고 아주 우울한 음악으로 공간을 채운 다음, 캔버스에 색을 엷게 레이어드하는 것으로 작업을 시작한다. 이런 루틴으로 10년 정도 하다보니 이제는 하나의 의식같은 시퀀스(sequence)가 된 것 같다. 그렇게 제일 어두움부터 칠하고 그 위에 실핏줄 같은 가는 선들을 레이어드하는 하고 마르고 나면, 다시 이 작업을 수없이 반복한다. 이렇게 계속 반복하다보면 그 겹겹히 쌓여진 차고 쓸쓸한 색감들이 아름답게 보이는 순간이 있다. 이런 무의식적고 명상의 시간 같은 작업과정 속에서 영감이 떠오르며 구체적인 형태를 잡아간다. 인간 본연의 어둡고 deep한 감정들을 극대화시키면서 지극히 사적인 카타르시즘을 즐기는 편이다.
의학용어 중에서 독이 약이 된다는 호르메시스(hormesis) 효과라는게 있다고 한다. 생물체에게 약간의 스트레스나 독성있는 물질이 오히려 면역력을 높여주는 효과가 있는 것인데, 식물도 환경이 열악하면 생존을 위해서 아름다운 꽃을 피우듯이. 나에게는 작업과정 자체가 그런 호르메시스 효과를 주는 것 같다. 이른 아침에 작업하는 이유도 색감에 대해 민감한 부분도 있고, 인간 내면의 부정적인 감정들을 어둠이 아닌 밝은 공간에서 직시하며 감정적인 내성을 기른다. 그래서 나는 나의 작업이 슬프고 애처롭지만 극한의 어둠을 지난 새벽녁의 하늘처럼 많이 슬프지않고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울림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갔으면 한다.
2022년 작업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