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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윤

인터넷은 나의 유토피아다. 무질서의 기록으로 만들어진 인터넷은 일종의 쾌락의 도서관(Archive)이다. 가상의 유토피아 속은 결국 익명성 너머의 비윤리성이라고 생각한다. 익명성을 전제로 사용자(使用者)1)들에게 도덕심을 숨긴 채 최대의 미학을 끌어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인터넷에서 무엇을 검색하던 인조물들을 쉽게 볼 수 있다.
가상의 유토피아가 가장 완벽해진 이유는 '익명성'을 통해 결핍된 현대인들의 페르소나가 벗겨진 반사회적인 또는 심리적인 날 것 그대로의 무언가의 정수라고 생각한다. 익명성을 통한 무질서한 날것들은 일종의 ‘카타르시스 (katharsis)’를 느끼게 한다. 무의식 속에서 감정, 욕망의 배설은 희열을 느끼게 하며 그 흔적을 통해 받아들이는 자마저도 희열을 느끼게 한다. 단순한 흥미로움이 아닌 알 수 없는 타인의 희노애락을 즐기고, 가상공간에서의 삶과 죽음을, 픽션(Fiction)에서의 공상을 즐기게 해주는 가상 세계는 그 어떠한 윤리 법칙도 존재하지 않는 유토피아다.
기술의 발전은 동시대 사람들을 남는 시간에서 대부분을 인터넷을 소비하게 했으며 더욱 줄어드는 사람들과의 대면적 거리는 인터넷에서의 불특정 인간들과 접촉하게 한다. 그만큼 대중은 메타버스, ai와 같은 기술력의 발전에 주목하게 된다.
하지만 그 기술력을 통한 인간관계의 기록물들은 무엇일까?
우리의 행위는 어디의 누구를 위한 것일까?
조지 오웰의 빅브라더(big brother)2)의 기록물일까, 아니면 일종의 생활 양식의 계승(繼承)일까?
나는 현대 인간이다. 현대인은 인터넷을 멀리할 수 없다. 인터넷이라는 가상공간을 이상향으로 신격화하는 풍조, 사진기의 발전과 같이 재현이 전부가 아닌 시대에서 구상물은 해석하기 위한,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나는 이에 반해 밈3) , 스크린 샷, 플래시게임, 창작물에서의 양산형으로 나올법한 인터넷 이용자들의 상상들에서의 노스텔지어 (향수, 鄕愁) 끌어온다. 작품 활동을 통해 관찰자로서 불특정 다수에 섞인 채 구경하는, 제 3자의 입장으로 가상의 공간을 현실로 끌어오는 작업을 통해 카타르시즘을 통한 감정의 순환을 바란다.
1)사용자( 使用者) ; 정통망법에서 정보통신서비스를 이용하는 자를 말한다.
2)개인의 정보를 독점하여 사회를 통제하는 권력. 또는 그러한 사회 체계.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에 나오는 허구의 독재자에서 비롯되었다.
3)‘밈(meme)’이라는 단어는리처드 도킨스의 베스트 셀러인 〈이기적 유전자〉(1976)에서 유래되었다. 인터넷 상에서 유행하는 '문화 요소'이자 대중문화 의 일부이다
흔한 창작물에서의 대표 주자인 '무언가를 구해주는 용사'의 클리셰(cliché) 항상 무언가에 대한 숙명을 가진 용사는 용맹하게 무언가를 위해 문제를 헤쳐나가며 승리하고, 또는 문제를 해결해낸 히어로들이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 도시에서 수많은 개개인들의 문제들을 해결해 줄 '용사'와 같이 존재해줬으면 좋겠다는 상상이다.
수많은 마음 속에 존재하는 ‘추억’에서의 어린아이들을 위해 만화 캐릭터, 게임 캐릭터와 같은 추억에서 존재하는 향수의 선망 대상을 용사라고 생각한다. 어느 세대를 막론하고 용사와 히어로는 문제를 해결해낸다는 공통점에서 나의 짐을 짊어져 줄 수 있는 '어른'이라는 존재를 찾는다고 생각한다.
마음 속에 존재하는 만화캐릭터, 게임캐릭터와 같은 추억에서 존재하는 향수의 선망 대상을 용사라고 생각한다.
우상이라는 존재는 항상 어떠한 방식으로든 존재한다. 히어로, 용사, 만화 주인공, 게임 캐릭터들은 누군가를 항상 사랑받기 위해 어느 누군가가 탄생시켰다. 어떠한 역경이든 버텨내며 타인을 돕는 이타적인 마음씨. 하지만 항상 그렇게 고통받는 고난만 겪다보면 용사들도 지치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우상이라는 ‘신’은 누군가를 위하다가 언잰가 지치게 되지 않을까.
복잡한 도시 속에서 길을 잃은 우상들을 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