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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가 두려웠던 작은 바이올리니스트

2023년 7월 14일 오후 10시 00분
악기를 처음 잡았던 건 다섯 살이었다. 취미로 이어오던 악기는 조금 귀여운 이유로 지금까지 나를 가장 잘 설명하는 도구가 되었다. 초등학생 때 청소년 오케스트라에 가면 보이는 예원학교 교복을 입은 언니들이 너무 멋져 보이는 게 아닌가.
저 언니들은 커서 멋진 클래식 아티스트가 될 것이라는 말에 나도 그렇게 되고 싶다고 생각했고 소리를 내는 일이 좋았기에 비교적 늦은 나이였음에도 입시에 도전했고 운이 좋게 합격했다.
세계적인 예술교육의 요람이라는 이념을 가지고 있는 예원학교는 피아니스트 조성진, 임윤찬 등을 배출한 예술중학교라 일컬어진다.
학창 시절에는 정원순 교수님께 배웠다. 지금 내 음악의 기반을 다지신 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시 나의 눈에 선생님은 큰 산처럼 비쳤다. 공부를 끝까지 이어가면 선생님처럼 예술가, 좋은 지도자가 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돌아보면 음악가라는 직업을 진지하게 꿈꿨던 첫 순간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렸을 때 나는 남 앞에서 실수하는 모습을 보이는 걸 아주 싫어했다. 이런 성격은 철저히 연습하는 장점을 만들었지만, 무대에서 작은 실수를 하면 얼어 붙어버리는 단점이 되기도 했다. 그랬기에 학창 시절 꽤 긴 시간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고 느꼈고, 선생님 앞에서는 너무 멀쩡히 연주하는데 무대에 올라가면 그러지 못해 선생님도 나도 답답할 노릇이었다.
예고 실기고사 날이었다. 무대를 기다릴 때는 늘 불안감으로 인해 잡생각이 밀려들며 긴장에 사로잡혔는데 그날은 정신이 점점 또렷해지며 잡생각이 거둬지고 곧 내가 펼칠 음악에만 집중이 되었다.
피아노 앞에 자리를 잡고 무대에 뿌리를 박아 내리듯 두 발을 고정했다. 첫 음을 위해 활을 그었고 곧 공기는 다르게 느껴졌다. 요동치는 공기가 안정되어 내가 음악을 펼쳐낼 수 있도록 차분해지는 것 같았다. 무대가 주는 기쁨을 처음 경험했던 것 같다. 무대에서 오직 음악에만 몰입했을 때의 그 쾌감을 말이다.
고등학교 2학년의 정재희, 독주회 현장 사진
당시에는 그 경험이 이유 없이 갑자기 찾아온 기분이었는데, 그때의 나를 돌아보면 명확한 이유가 있다. 나는 연주를 준비할 때 음반을 정말 많이 들었다. 내가 어떤 소리를 내기 원하는지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프로 연주자들이 내는 완성된 소리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연습에서는 그 소리와 내 소리를 비교하며 끈질기게 연습했다.
그 과정들이 쌓여 그 순간 첫 음을 낼 때 확신을 얻었던 것 같다.
그렇게 작은 성취들을 맛보니 그동안 노력해 온 것에 대한 보상이라도 받듯이 협연 기회, 수상자 연주회 등 무대에 설 일이 많아졌고, 무대라는 공간에서 나는 이전과 다르게 연주를 즐기며 펼칠 수 있게 되었다. 아무리 어려운 곡이고 큰 무대라고 해도 어떻게 해낼지를 알았다. 나의 약함을 극복함으로 얻은 소중한 자신감이었다.
정재희의 손
스노우볼링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노력했던 시간들이 계속 쌓여 달콤한 열매를 만끽하니 연습을 하는 것이 더 즐겁고 또 다른 도전들이 기다려지기도 했다. 스노우 볼은 내가 계속 노력한다면 나 몰래 조금씩 계속 커진다는걸 알게 되었던 것 같다.
그랬기에 늘 새벽까지 연습하는 것과 생일, 크리스마스, 1월1일 일지라도 하루도 빼지 않고 연습실로 향했다. 그리고 그것들이 힘들게 느껴지지 않았다. 또 나에게 성취를 줄 시간들이니 말이다.
글 정재희 / 편집 이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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