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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와 진솔함을 쥐고 마주한 사회의 장벽

피아니스트 홍유진의 음악가노트 2024년 8월 7일 23시 00분
예원, 서울예고, 서울대를 거치고 독일에서 모든 학위과정을 마친 시점에 나는 오직 기뻐할 수 없었다. 유럽 전역을 코로나라는 재앙이 강타해 공포와 증오의 여운이 감돌았고, 이제 학업 과정을 나와서 스스로 길을 개척해나가야 하는데 알 수 없이 느껴지는 스산한 기운이 감돌았다.
한국에 들어가면 더 힘든 시간이 기다리고 있을 것을 알았던 것일까, 냉정한 사회 앞에서의 무력감을 마주할 자신이 없어 나는 독일에서 할 수 있는 공부를 더 하고자 했다. 하지만 타지 생활이 몸에 맞지 않아 몸은 점점 아파왔고, 결국 보다 못한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귀국하게 되었다.
휴학, 재수 단 한 번의 지체 없이 최고연주자과정까지 달려왔다 보니 내 나이는 만 30세였다. 마냥 어린 나이 탓을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지만, 코로나로 국내 상황이 흉흉하기도 했고, 어떤 학교도 어떤 학생도 나를 써주거나 배우고자 하는 사람은 없었다.
쉼 없이, 그렇기에 뒤쳐지지 않았던 나에게 드디어 정체가 찾아왔다. 마치 세상이 나에게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피아노를 붙잡고 살아온 십수 년의 시간들이 무색했지만, 아무것도 원망할 수도 없이 나에게 닥쳐온 이 적막이 악몽 같았다. 다들 어떻게 살고 있는건가, 궁금할 정도 였다.
다행히 나는 그냥 퍼져버리는 사람은 아니었다. 이 길이 내 길이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을 슬프지만 억지로 해냈고, 뭐라도 해야 했다. 기획사에 면접을 보기도 하고 자격증을 취득해 안정적인 월급을 받고자 계획하기도 했다.
하지만 면접을 다닐 수록 나는 정말 음악 이외에는 아는 것이 없구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음이 편해질 만한 진전은 없었지만 그렇게 사회에서 나를 계속 굴림으로 점점 단단해진 것일까 조금씩 내 발밑에 나를 지지하는 힘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나의 강점인 피아노와 가까이 있지 않는 내가 안타까우셨는지 부모님께서는 독주와 레슨보다는 반주를 중심으로 활동 해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의견을 주셨다. 반주자의 포지션이 돈을 잘번다 라는 말은 반만 맞는 말이지만, 어쨌든 생계는 해결해야 했고 쥐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국내대학원에 박사 과정을 이수하기로 한다. 그렇게라도 나는 계속 내가 음악가임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으로 빠져들고 싶었다.
2부에 계속

편집자의 글

사회 초년생의 고됨은 늘 최고의 교육기관에서 수학한 피아니스트도 피해 갈 수는 없었다. 피아니스트 홍유진이 진솔하게 나눠준 귀국 초기의 막막함에서는 그녀의 용기와 일관된 그녀의 명랑함을 발견할 수 있었다.
예술가와 몇 번 접촉하게 되면 그의 예술이 대락적으로라도 상상이 되고 대부분 그 예상은 맞아떨어지는데 홍유진의 음악은 상상이 안되었다. 하지만 그녀의 글을 받아보니 상상이 안되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는데 그녀의 음악에서 드러나는 것은 특별히 그녀가 일상에서는 열심히 드러내지 않는 용기와 진솔함이었다.
용기와 진솔함이라는 단어에 대해 평소보다 깊게 사유 해 보고자 한다. 그 단어의 의미란, 현재의 맥락 상 해석하기로는 어쩌면 사회 또는 외부에서 나를 어떻게 대우하더라도 일관되게 그 고유함을 잃지 않는 자신감이라고 생각된다.
그래야 언젠가 빛을 보게 될 때 여전히 친절하고 쓸모 있는 모양을 하여 제 역할을 다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글 이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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