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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아

이정아 / 3월 / Oil on canvas / 신한 110-462-286177 / 116 x 80 cm / 2024 / 5,000,000
이정아 / 돌아가는 길 / Oil on canvas / 신한 110-462-286177 / 116 x 80 cm / 2024 / 5,000,000
이정아 /certain time/ Oil on canvas / 신한 110-462-286177 / 100.0 x 72.7cm / 2024 / 4,500,000

작가노트

죽음과 삶은 순환되며 삶은 죽음이 없이는 영위되지 않는다. 나는 삶보다 죽음에 집중하는 것으로, 죽음이 있어야 삶이 존재한다라는 전제 하에 작업을 진행하였다. 모든 생물들은 죽음을 빌어먹고 살아간다. 그렇게 우리는 죽은 것을 먹음으로써 살아가지만 죽음이라는 개념을 두려워하고 부정적으로 여긴다. 죽음이 비료가 되는 것으로써 인류는 순환 되며 건강한 사회가 만들어짐에도 불구하고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삶의 영역’ 에서 숨을 쉬고 살아가기에 익숙한 삶을 긍정적으로, 미지의 세계인 죽음을 부정한 것으로 취급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죽음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거부하며 몽환적이며 긍정적인 이미지로 표현하고자 한다. 죽음을 영원한 잠, 즉 영면이라고 표현한다. 우리는 매일 하루에 한 번 잠에 들며 죽음을 경험한다.
무의식에 대해 연구한 칼 융의 이론과 그의 분석심리학을 토대로 잠을 자며 보여주는 꿈이라는 무의식을 분석하였다. 그의 이론을 토대로 분석한 꿈은 사후세계를 미리 엿보는 것에 가까웠다.
죽음과 맞닿은 무의식을 깊게 연구할 수록 삶에 대해 궁금증도 커졌다. 삶과 감정은 서로 크게 작용한다. 그렇기에 특히 처절한 감정(MISERY)을 표현하고자 노력하였다. 하지만 즐거움(JOY)이 없다면 고통조차 느끼지 못하기에, 삶에서 느낄 수 있는 작은 JOYFUL 을 표현하고자 했다.
나는 사람의 얼굴 표정을 파악하는 것으로 스스로 불행했다. 한국인들의 눈에 담긴 불행은 누군가를 평가하고자 함으로 기인한다. 사회에서 정해진 정상성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그 누구도 불행을 피해갈 수 없게 하는 눈으로 서로를 감시했다. 한국에 온 이후로 그 불행함을 담은 사람들의 눈을 똑바로 응시할 수가 없었다. 밝은 색채를 띄고 있던 나의 작업물들은 점차 어두워졌으며 겉잡을 수 없게 되었다.
언젠가 볕이 잘 드는 카페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한국인의 특성상 패션은 비슷하지만 허벅지 아래로 보이는 다양성이 눈에 띄었다. 무엇에 종사하는 사람인지, 나잇대는 어느 정도인지, 정체성, 취향, 그가 가지고 있는 허세까지도.
최대한 눈을 보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결국 나도 사회에 녹아들었다는 반증이라는 생각이 들어 이 주제를 생각해봤다. 새 신발을 신어 물집 잡힌 발, 높은 힐을 오래 신어서 말도 되게 망가진 발, 공사장에서 일해 두터운 신발을 신을 수 없는 발, 학생들이 신는 크록스, 의사들이 신는 크록스, 회사원의 신발 등등. 얼굴조차 보지 않았는데 개인의 성격이 파악된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작가로써 낡은 것을 추구하기엔 시대에 뒤쳐진다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고전의 가치는 영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회화의 고전성을 유지하며 새로움의 즐거움(JOYFUL)을 추구하였다. 스스로가 갖고 있는 색감의 강점을 살리고, 회화가 가지고 있는 붓질의 느낌, 물감의 두텁게 올리기 등 작업을 하는 동안 즐겁게 진행하였다. 그만큼 감상하는 자 역시 즐거움을 가져갈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