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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자의 본질을 찾아가기

피아니스트 홍유진의 음악가노트 2024년 8월 31일 9시 00분
본인은 다채로운 아이디어로 익숙한 곡도 새롭게 구현하시는 교수님 밑에서 학부 시절을 보냈다. 선생님께서는 다른 동료들이 많이 연주하기에 익숙한 작품도 제 연주에서는 더 남다르게 들리게끔 만들어 주셨고 나는 곧 잘 따라가고는 했다.
그렇게 교수님을 잘 따라가다 보니 교수님 눈에 나는 영특하게 여겨졌고 교수님은 더 높고 많은 도전을 할 것을 권해 주셨다. 중앙콩쿨, 동아콩쿨 같은 콩쿨이 일종의 그런 도전이었는데 입상을 한다면 꽤 오랜 시간 든든한 타이틀을 가질 수 있는 목적지였다. 하지만, 사실 나는 그런 것을 진심으로 원하지는 않은 모양인지 그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강박에 점점 지치어 갔고 음악의 본질에 대해서 생각할 여유가, 아니 여유 자체가 없었다고 생각된다.
20대 초반은 나에게는 부담이었다.
음악가로 성격이 잡히기 시작하고 아름다움을 탐구하고자 시도에 흥미가 생기기 시작했던 건 유학에 가서부터였다. 독일에서 만난 교수님께서는 음악을 인문학적으로 접근하시어 마음이 먼저 동하게 하셨는데, 첫 레슨으로 쇼팽 발라드 1번을 들고 간 본인은 안 틀리고 온전하게 치는 것에 집중 했다. 그런 나를 위한 선생님의 첫 번째 레슨은 “소리” 그 자체였다.
쇼팽이 여기에 왜 이러한 음을 나열 했는지에 대한 근거, 그는 이 곡을 쓸 때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었고 그렇기에 이러한 스토리텔링이 가능해야 한다 라는 접근으로, 음악을 이루는 수많은 음들의 색채와 질감을 내가 마음으로 다룰 수 있게 시도하는 방법을 가르치셨다고 생각된다.
"유진 너가 이 정도까지 왔으면 어떤 음악적 상상력을 근거로 관객에게 어떤 모양의 쇼팽을 들려줄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라는 말씀의 대목에 핵심이 있다.
그 덕에 음악을 학문적으로 사랑하게 되는 방법을 알게 되었던 것 같다. 잘 치는 것을 넘어 이 예술이 어떤 모양인지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전달해야 하는지, 전달하는 입장의 연주자가 얼마나 이 것을 이해해야 하는지. 그러한 가르침들이 저를 이전보다는 편안하게 음악을 바라볼 수 있게 했던 것 같다.
다음 노트에는 위에 언급한 "전달하는 입장의 연주자"가 무엇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 지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 나눠보겠다.
글 홍유진 / 편집 이지호

편집자의 글

염세적인 시각으로는, 사회란 거대한 치킨게임의 양상을 띄고 있다는 것이 현실이며, 이러한 사실을 어려서부터 잘교육받은 우리는 뒤쳐지지 않기위해서, 나의 몫을 잘 점하기 위해 정말 열심히 산다. 이것은 자유 경쟁 시장이 도입된 집단의 문명이 현대까지 발전할 수 있었던 핵심이유인 것을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지만 안타까운 현실이라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여유 없을 확률이 높은 사회에서 그래도 소진되지 않고 본질을 끌고 가는 방법은 무엇 일까 하며, 그리고 기약 없는 경쟁이라는, 인간성의 퇴보를 야기하는 환경과 점유를 위한 각종의 비열과 치사함 사이에서 품격을 지켜가는 이들의 확실한 경쟁력이란 업에 대한 "본질적인 이해"라고 생각한다. 꾸준히 한 맥으로 경력을 이어가고 있는 선배들이나 자신의 것을 남들과는 다르게 제공하는 이들의 맑은 열정을 가진 이들을 관찰할때면 본질적인 이해란, 사랑과 다를 것이 없다. 제공 받는 이에게 자신의 것을 어떻게 전달 해야 할 것인지. 그를 통해 나의 존재를 스스로 어떻게 알아가고 확인할 것인지.
몇자 적다 보니 마음에 남는 이 모든 분투의 본질적인 물음은 결국 "나는 진심으로 무엇을 하고 있으며 나 이외의 것들을 어떻게 사랑하여 함께 지속가능함을 이어갈지" 인것 같다. 이에 대항하는 모든 제공자의 경쟁력은 떠오르는 것이 없다.
글 이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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