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테위드 아티스트로의 첫 번째 활동, 다가오는 1월 12일에 슈만 부부의 작품과 브람스의 레퍼토리를 다루기로 하였다. 이에 앞서 어쩌면 신파적인, 이들을 관통하는 단어인 사랑에 대해 생각해 본다. 생각보다 많은 경우 언어는 우리가 사용하는 것보다 더 세세한 의미를 가지고 있어 그것의 사전적 의미를 탐색해 볼 때 본질에 더 가까이 갈 수 있다. [사랑: 상호 깊은 인격적인 애정에서 단순한 즐거움까지를 아울러, 강하며 긍정적으로 경험된 감정적 정신적 상태이다.] 그래, 마치 우리는 사랑이 형체를 갖추고 물리적으로 우리 마음에 있는 것처럼 여겨 사랑을 갈구하거나 확인하려 하기도 하고 사랑으로 인한 강한 소유욕을 경험할 때도 있다.
하지만, 사랑은 사전적 의미처럼, 마치 자석의 양극이 서로 당기는 것처럼, 또는 마찰에 의한 정전기처럼, 필요조건의 충족으로 인한 어떤 상태를 일컫는다. 너무 오래된 말이라 식상할 수 있겠지만, 이러한 재사유에 의거하여 예술가에게 사랑이라는 경험은 필수적이라는 구어에 대해 생각해 보자. 표현이 안 열려있는 학생들에게 "너 연애는 안 하니?"와 같은 다소 1차원적인 비난 아닌 비난을 할 때가 있다. 그 질책의 본질은 감정의 교통 상태를 최대한으로 열어 음악과 교통 하라는 뜻으로 생각하고 말한다. 조금 고쳐 말하자면, 작곡가가 의도한 점을 향해 넓게 파악하고 날카롭게 반응하기 위해 마치 사랑할 때처럼 무장을 해제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전해진다.
어쩌면 사랑이란, 그러니까 사랑이라는 상태란 상대방에게 넓게 반응하고 호흡하기 위한 열린, 넓은 상태를 의미하지 않겠나 정리해 본다.
2025년 1월 12일 오후 4시, 1월 월간연주자 장은정, 갤러리 디아르테 청담
독주회에 찾아오시는 관객들을 위해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서로 사랑하는 상태였던 슈만과 클라라. 클라라는 당시 시대적 배경 상 드물게 잘 나가는 여성 피아니스트였다. 반면, 미래에 그녀의 남편이 될 슈만은 그의 부모가 희망했던 법을 공부했지만, 부모의 영향력이 잦아질 때쯤 그는 결국 피아니스트의 길을 간다. 안타깝게도 그는 좋은 연주자이지 못했고 그에게 허락된 수식어는 무명작곡가 일뿐이었다.
사랑에 빠진 클라라와 슈만, 이를 반대하는 슈만의 장인이자 스승인 클라라의 아버지는 슈만을 고소할 만큼 결혼을 반대했지만 이러한 저항은 그들의 사랑을 더 깊어지게 하는 시련일 뿐이었다.
슈만의 뜨거운 가슴에 쏟아지는 이러한 고난은 창작의 원료가 되어 클라라를 향한 사랑 노래들은 홍수처럼 넘쳐 마르지 않을 것 같았다. 두 개의 연가곡집. '시인의 사랑', '여인의 사랑과 생애'라는 그의 대표적인 연가곡집 등 한평생 작곡한 2백50여 곡 중 절반이 바로 그 해에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이번 연주의 부제인 <헌정> 도 클라라에게 결혼 선물로 바친 곡이다.
'나 자신보다도 다른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그의 품에 안긴 생활이 시작되려 하고 있다. 신이여, 모든 어려움을 인내할 수 있는 여자가 될 수 있도록 저에게 힘을 주소서.' 클라라는 마치 합일의 기쁨보다는 고통을 직관했는지, 새 신부의 표현이라기에는 다소 비장한 말을 남겼다. 그의 예상과 각오보다 그들의 시련은 더 컸다. 슈만은 자살기도 끝에 결국 정신병동에서 생을 마감한다.
R. 슈만의 곡을 연주하다 보면
슈만이 특별히 연주자와 관객의 마음을 설렘과 운명적인 고통을 경험하게 하는 이유 중 하나는 형식적으로 시작과 끝이 명확하지 않은 프레이징이 마치 어디론가 계속 가고자 하는, 그가 생각하는 도달할 수 없는 이상을 향해 방황하는 듯한 흐름이 이어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슈만은 처음 만나는 관객에게 친절한 작곡가는 아니겠다. 하지만 문학작품을 읽고 또 읽을수록 이야기 내용과 흐름이 더 잘 보이듯이 이 곡을 듣고 연주를 해 볼수록 한 편의 소설이나 시를 읽는 것 같다. 그런 나의 감상에 동의를 하듯 슈만의 악상 기호는 '빠르게, 느리게' 같은 형식의 표현이 아닌 ‘부드럽게, 생기 있게, 불과 같이..'와 같이 요동하는 인간의 내면을 직접적으로 담아내었다.
또한, 재능 있는 연주자이자 작곡가였던 슈만의 아내 클라라, 어릴 적부터 신동으로 환호받던 그녀, 인간으로서 고통의 순례를 걸었던 슈만의 아내로서의 삶은 어떠했을까. 비애를 이고 살지 않고 순수한 연주자로서 오롯이 빛났다면 무엇이 어떻게 달라졌을까 그녀의 곡을 다룰 때마다 상상해보곤 한다. 묵묵하고, 헌신적이었던, 아름답고 가녀린 선율 속에 빛나는 슬픔이 묻어나는 그녀를 생각해 본다.
글 장은정 / 편집 이지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