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테위드의 갤러리에서 연주하는 것이 벌써 네번째, 2023년 겨울부터 이어진 인연과 이 예술 공간에서의 연주는 어떤 무대에서보다 나를 더욱 진솔하게 보여줄 수 있는 시간들이었고, 무대와 관객이라는 예술의 요소가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 상기할 수 있게 하는 경험이었다.
연주를 위한 나의 호흡과 함께 공간에 유영하는 관객들의 일상적인 소리들. 스치는 옷깃 소리, 의자의 삐걱이는 소리 등 공간의 모든 소리가 적나라하게 들리며 예술을 사랑하는 이들이 자리한 현장의 밀도 높은 시간 속에서 예술의 경험을 넘어 진정한 예술의 공유라는 의미로 내 기억과 내면에 자리 잡아갔다.
그렇다면 예술을, 그리고 무대를 공유한다는건 어떤 의미일까. 귀를 기울여 정성스럽게 듣는 일. 즉, “경청”만이 함께 무대를 공유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경청은 단지 관객의 자세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닌 연주자 스스로가 음악을 어떻게 대하는 것이 좋을지, 예술 주체의 태도에 대한 답이기도 하다.
오는 15일 안려홍과 맹진석의 조인트 리싸이틀
나에게 다가오는 모든 소리, 심지어 침묵의 순간조차도 경청으로 사랑하는 일은 어떤 말과 행동 보다도 예술이 창조되는 순간이며 이와 같은 태도는 듣는 이와 함께 하는 공감을 만든다고 느끼고 있다.
삶을 살아갈 때,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일이란 대체로 본인이 경험하지 못했던 일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타인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을 때, 마치 내가 경험한 것같이 경험적 공감을 가능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이는 독자께서 종교와 음악, 독서 등을 통해서 경험해 보지 않으셨을까 추측한다. 또한 물리로써 실재하지 않는 것들에 대한 간접경험은 함께 하는 이들과 더 깊은 공감을 가능케 한다고 생각한다.
공연의 규모와 형식을 떠나 예술가로써 관객을 대면하는 또 한번의 시간을 생각하며, 무대라는 곳은 누군가의 표현으로는 심판대와 같이 부담이 있는 자리일 수 있겠다. 늘 명예를 걸고 다시 한번 나를 증명하는 자리라는 점에서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이 자리에 서고 싶은 이유는 뭘까. 자유롭고 싶은 마음과 공유하고 싶은 마음때문이다. 개인적인 부담을 넘어서 무대를 향해 똑바로 직시하고 나아갈 때만 느낄 수 있는, 그 너머의 자유로움이 있다. 준비 과정의 외로움을 뚫어내야 얻을 수 있는, 예술의 공유로써 예술가와 관객이 받는 위로가 있다. 이런 경험들은 무대를 준비함에 있어 힘든 시간들을 견디게 하는 소중한 자산이 된다.
따라서 완벽한 공유의 지향은 음악을 완성에 조금 더 가까이 가고싶은 마음을 만들고 계속해서 무대에 오르게 하는 동력이 된다.
글 안려홍 / 편집 이지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