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9월 13일 오후 6시 00분
지금 이 순간에 “나는 나로서 살아있구나”라는 느낌을 경험해 본 적이 있는가? 그토록 강렬한 순간을 경험해 봤다면 그 순간으로 하여금 한 인간은 자신의 자아와 삶의 목적을 결정하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삶의 시간 동안 붓을 놓지 않겠다 결심하게 된 이유가 위와 같기 때문이다.
문門door_22, 2023, 순지에 채색, 75×140 cm (150dpi)
처음은 서예로 시작했다. 붓과 내가 종이 위를 정처 없이 떠돌아 그저 잠깐 서 있는 감상, 잔잔한 수면 위에 누워 부유하는 기분으로 거듭 연습했던 글자.
하나의 글자에 온 기력을 넣으려 노력했다. 그것을 이루는 선과 모양에 내가 온전히 담기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어느 날 붓을 놀리다 잠시 종이에서 눈을 떼고 주변을 바라봤을 때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생기를 발하는 듯 했다. 여기에 자리하며 살아있다고 말하는 듯 그것들이 가지고 있는 본연의 빛깔이 내게 다가오는 듯 했고 그것을 포착하고 싶었다.
풍성한 시간의 시작, 순지에 채색과 은박, 64.5x82.5cm, 2023(150dpi)
그 순간은 “살아있음”에 대해 인지하는 시간이었다고 생각된다. 살아있다는 사실을 감각으로 느끼는 체험이었다. 한 번 더 그 순간을 만날 수 있을까 싶은 마음으로 서예와 더불어 문인화를 시작하게 되었다.
문의시초4_순지에채색_202350.5x50.5cm(150dpi)
그렇게 흰 세계에 나의 선과 점으로 감상을 물들이는 일을 작업으로 삼게 된 지 십 수년이 지났다. 첫 번째 예술가 노트로 독자들께 본인이 예술에 발을 들이고, 삶이라는 예술을 처음 인지한 순간을 나눴다.
글 유정 / 편집 이지호
편집자의 글
유정의 작품에서 드러난 선, 점, 여백이 마음을 울리는 이유는 작품이 작가를 오롯이 담아낸 그릇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작가 유정이 자신을 담아내어 종이에 그려진 모습들은 주어진 삶 속에 끝없이 존재 의미를 찾아야 하는 우리에게 한 폭의 위로를 전하는 듯하다.
글 이지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