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곡은 나의 약점을 자극하고 나는 이 곡을 향해 도전함으로 이로써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을 스스로 암시했다. 표현의 스펙트럼을 의식적으로 넓히려는 연습을 했는데, 언제나 그렇듯 진리는 참 단순했다. 귀를 세우고 스스로의 소리를 검열하듯 '너무 오버하는 것이 아닌가?', '이 소리는 정말 작은 소리인가?', '이 소리는 정말 말하는 듯하게 연주되고 있는가?' 등의 의식적인 "귀의 반응"이 있었고 소리로의 표현과 사운드 폭의 벨런스를 찾으려 노력하였다.
진정한 노력은 늘 그렇듯, 시도와 좌절의 연속이었다. 리스트 소나타는 대서사의 형식을 가지고 있기에 매우 다양한 모습의 "기-승-전-결"이 있었고 "결말"에서는 큰 폭의 감정적 표현이 가능해야 했고 그것이 나에게 필요한 부분임을 잘 알고 있었다. 레슨을 받아도 해결되지 않는 갈증이 있던 와중 문득 곡에 요소로 사용되는 감정과 비슷한 감정을 연기하는 배우들의 표현을 유심히 관찰해보기로 했다. 새로운 방식을 통한 감정의 표현과 전달에 대한 탐구였다고 생각된다.
특히나, f에서부터 fff 로 나아가는 표현을 할 때에 배우들의 감정의 다이내믹을 의도대로 드러내고자 할때, 발성과 비언어적 표현으로 확인되는 감정의 대비를 심도 있게 파악하고 분석했다.
이러한 다른 방향에서의 탐구는 다른 분야의 예술을 통해 시청각적으로 그리고 표현에 있어서 대비의 다이나믹을 체화하려 노력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표현의 스펙트럼이 넓어지게 되었고 학기 말의 무대에서 곡의 연주를 시도할 수 있었다.
처음 무대에 내어놓는 곡이기도 하였고, 한계를 체험한 곡이었던지라 성공적이지는 못했다. 무대란 본연의 기질이 표출되는 곳이기에 새로 받아들인 것들을 수월하게 내놓기에는 무리가 있었던 것이다.
잦은 실수가 있었고, 호흡이 부자연스러웠으며 표현과 프레이징은 거칠었다. 줄여 말하면 망한 연주로 추억한다. 언젠가의 성공적인 공연을 위한 배움이 있었던 초석으로 여긴다.
연주가 끝난 후에 교수님께서는 "리스트 소나타는 그 규모와 난도가 큰 나무와 같아서 피아니스트의 성숙 안에서 자라날 시간이 필요하다."라는 격려를 해주셨다.
이후로는 리스트 소나타를 다루고 있지는 않다. 내가 건반위에서의 여유와 예술적 상상력이 더 깊어지고 무르익을 때에 다시 마주하고 싶은 큰 산 같은 존재다. 아마 40대에 이르러서가 아닐까 싶다.
나름의 분투가 있었기에 배움과 성찰이 있었던 첫 학기의 시간이 지나갔고, 새로운 곡들을 준비함과 함께 방학을 맞이하게 되었다.
글 유현성 / 편집 이지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