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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연주자과정의 말미에 있는 피아니스트

최고연주자과정의 말미에서
바흐와 베토벤을 가장 사랑했던 탓일까. 돌아보면 독일에서의 깊은 공부를 하고 싶다는 소망과 실현은 어렵게 닿은 시간이었다. 마스터 입시 때는 지망하던 교수님이 미국 음대로 떠나셔서, 엑자멘 입시 때는 지망하던 교수님이 은퇴하셨다. (독일은 우리나라와 달리 학생들이 학교의 이름보다는 재직 중인 교수와 그의 학풍을 따르기에 이는 진학 결정에 중요한 요소가 된다.)
독일 유학은 나에게 허락되지 않는 것인가 보다 생각하였고, 국내대학에서 박사 재학을 하며 그 기간 중에 병역을 해결하였다. 이후 복학을 고민하며 이런저런 고민을 하던 중 어머니께서 독일에서 공부를 이어갈 것을 권하셨다. 솔직히 그 당시 나는 유학은커녕 공부에 지쳤고 의미가 없음을 느끼던 중이었다. 어머니께서는 평소 나에게 뭔가를 권하시거나 하는 분이 아니시었기에 이 말씀은 꼭 들어야 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고 큰 고민 없이 어머니의 권함에 응했다.
뮌스터 국립음대의 최고연주자 과정을 Michael Keller 교수님의 지도아래에서 배우게 되었다. 그는 스크리아빈의 직통 제자였던 러시아의 전설적인 피아니스트인 비탈리 마굴리스의 제자로 명성과 실력을 겸비 하셨을 뿐만 아니라, 제자와 음악을 특별히 사랑하시는 분이다.
고민도 잡념도 많은 30대, 나의 교수님은 내가 음악에만 집중할 수 있게 도와주시곤 하다. 특별한 어떤 방법이 아닌 진심으로 내 음악을 존중하고 사랑한다는 것을 전해주시는데, 공부를 이어가는 것에 항상 분투가 따랐던 나였기에 노 피아니스트의 그러한 따뜻함은 내게 필요한 것이었다.
이곳에서의 불편한 점(서비스가 한국에 비해 느린 것, 자영업이 한국에 비해 활성화 되어있지 않은 것 등)은 나에게 그렇게 큰 불편함은 아니었으며, 이곳에서의 좋은 점은 내가 평생 음악을 공부해 오며 바라던 것들을 가득 채워주는 듯하다. 그저 지적과 주입식 전략적인 입시 형태 안에서의 음악이 아닌 “왜 그렇게 연주하는가?”, “이 작곡가와 너와의 음악적 관계가 어떤가?” 등의 내면적이고 개인적인 질문과 가르침은 내용이 있는, 그러니까 내실 있는 음악교육으로 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 음악가를 육성하는 방법론은 나에게 오롯이 채움이었다.
30대 중반인 현재, 이제 공부를 마치고 현실로 뛰어들 준비를 하며 다짐하는 것은 “ Professional”을 잃지 않겠다는 각오다. 이 업에 대한 가치와 신념을 지키기 위해 매일 매일 최선을 다하며 한 명의 음악가로 살겠다는 앞으로 다가올 시간에 대한 포고다.
글 유현성 / 편집 이지호

편집자의 글

어렵게 얻은 것에 대한 애정
특별히 그것이 예술가가 자신의 예술을 지속하기 위한 노력과 사랑이라면 그러한 내러티브는 마치 개신교에서 전하는 예수 또는 사랑의 내용과 닮았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오래 참아내고 또한 온유한, 그 기조만으로 감동이 있는
글 이지호
유현성, ARTIST NO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