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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레슨이란, 언제나..2부

피아니스트 유현성의 음악가노트 2024년 8월 8일 23시 00분
라벨은 미리 샅샅한 연구로 준비를 단단히 했다. 오케스트라 형식으로도 쓰여진 곡의 총보를 보며 악보를 분석했고, 다양한 악기의 소리를 총괄하는 지휘자의 관점으로 곡을 바라보았다. 다행히도 교수님께서는 매우 독창적인 해석이라며 흥미로워하셨기에 수월하게, 지식과 아이디어를 교환하며 역량을 넓히는 레슨이 가능했다.
하지만, F.Liszt Sonata는 그렇지 못했다. 준비한 것들은 대부분 빗나갔다. 나는 이 곡을 마치 정갈한 한정식 코스처럼 세밀하고 교양 있게 해석했다면, 교수님께서 원하는 방식은 말하자면 훨씬 더 욕망적이면서 도발적인, 음식과 비교하자면 양식 풀코스 같은 것이었다.
피아니스트 유현성이 보내온 Gewandhaus Gross Sall 전경 라벨의 오케스트라 실황 현장
나는 교수님께서 제시하시는 극단적 캐릭터와 그것을 근거하는 표현의 질감, 템포, 손가락 번호, 터치들이 난감했다. 내가 보다 어린 나이에 이러한 지시를 받았다면 교수님의 말씀을 무조건 따르고자 했을 테지만 나는 이미 나만의 무언가를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하루아침에 선택되거나 바꾸거나 할 수는 없는 나만의 질감 같은 것 이었기에 당혹스러운 이 시간을 어떻게 풀어 나가고 무엇을 얻어가야 할지 고민이었다.
며칠간 연습실에 틀어박혀 나의 의견과 교수님의 지시 사이를 헤메다 레슨을 갔을 때였다. 교수님께서는 내가 아직 이 곡을 “오직 머리로만 이해하고 있다.” 라고 하시며 조금 더 직감적으로 ‘선과 악’이라는 감정적인 추상을 묘사해 볼 것을 주문하셨다.
추상성이란 묘사 된 후에 바라볼 때는 쉬이 추상이지만, 추상성을 묘사하길 바라는 주문은 당시에는 참 막막한 기분이 든다.
직접적인 해결책은 아니었다만, 내 음악을 둘러싸고 있는 이전의 틀을 벗어나야 한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데미안의 표현처럼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는 것까지는 아니지만서도 무언가 내려놓아야 했던 것일까.
이 전까지 나는 표현에 있어서 굉장히 객관성을 유지하는 태도였다. 좋게 말하면 말했다시피 객관적인 연주, 중심이 잡혀있는 연주였지만 꼬집자면 내 연주만의 특징이 없이 무난히 중심 잡힌 연주를 한다고 볼 수 있었다.
이 곡은 나의 약점을 자극하고 나는 이 곡을 향해 도전함으로 이로써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을 스스로 암시했다. 표현의 스펙트럼을 의식적으로 넓히려는 연습을 했는데, 언제나 그렇듯 진리는 참 단순했다. 귀를 세우고 스스로의 소리를 검열하듯 '너무 오버하는 것이 아닌가?', '이 소리는 정말 작은 소리인가?', '이 소리는 정말 말하는 듯하게 연주 되고 있는가?' 등의 의식적인 "귀의 반응"이 있었고 소리로의 표현과 사운드 폭의 벨런스를 찾으려 노력하였다.
3부에 이어서
글 유현성 / 편집 이지호
유현성, ARTIST NO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