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8월 20일 오후 11시 00분
Joonbyeong Lee - Scriabin: Fantasie in B minor, Op. 28
스크리아빈에 푹 빠져있던 학부 시절을 회상해 보자면 음악이 나에게 주는 힘을 얕게나마 알게 되었던 것 같다. 스트리아빈의 선율은 내 마음을 가장 많이 울리게 했고 나는 스크리아빈을 잘 만들어 연주하고 싶은 소망이 있었다.
그것은 곧 연습의 동기부여가 되었고 스크리아빈 외의 다른 작품을 공부할 때도 가장 중요한 것은 ‘작품이 내 마음을 움직이는가?’가 되었다.
이는 다소 극단적이게도 ‘내가 좋아하는 것이 내 의견이자 자아다.’라는 생각에 도달하게 했고 이러한 방향성은 인간관계에도 적용되었다. 조금이라도 어렵거나 불편함을 느끼면 그것은 바로 ‘싫은 것’이라 정의했다.
당시 게으른 성격 탓이었을까. 내가 받아들이는 여러 느낌 또는 감정을 다양한 결로 나누어 생각하기를 성가셔 했다. 마음에 그런 여유가 없었을 수도 있겠다. 관계를 좋은 사람, 아니라면 싫은 사람으로만 구분했다.
이러한 나의 자기중심적 편리만을 추구하는 성격은 스스로 아버지의 피를 상기하게 했고 그와 같은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과 위와 같은 생각 사이에 충돌이 일어났다. 혼란스러웠다. 내가 사랑하는 이들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이러한 회의에 지쳐 그저 세상을 한탄하다가 나를 진정으로 이해해주고 알아주는 사람은 없을 것 이라는 자기혐오에 빠지게 되었고 그럴 바에는 차라리 조용히 죽어 시체조차 발견되지 못해 아무도 내 죽음과 존재를 모르길 바랐던 시절이었다.
그러던 와중 학사 졸업 연주가 다가왔다. 프로그램은 어려서부터 뇌리에 박혀 좋아했던 모차르트의 론도, 다사다난 끝에 결국 이겨 승천한다고 느꼈던 베토벤 31번 소나타, 사랑하기에 아픈 것이구나 싶었던 리스트/바그너 사랑의 죽음, 가장 좋아하기에 무대에서 연주하고 싶었던 스크리아빈 판타지 등으로 구성 되었다.
내 감정의 구현에 있어 확신에 가득 찬 곡들이었기에 떨리지 않았다. 회상해 보면 질적으로 좋았던 연주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때의 정제되지 않음이 추억으로 떠올라 종종 꺼내 듣고는 한다.
아마 날것의 내 자신을 담아낸 첫 연주였고, 이것은 앞으로 음악에 정진하는 데에 있어 커다란 초석이 되었기에 그런게 아닐까 싶다.
이렇듯, 해결되지 못한 사춘기의 감정은 마음 안에 정제되지 않은 뜨거움으로 남았고 그것을 생활에서는 표현해 낼 줄은 몰랐지만 음악에는 담아낼 수 있었다.
많은 미스터치 정확하지 않은 리듬 등으로 좋은 연주가 아니라는 것은 확실하다. 이는 외적으로나 내적으로나 정리되지 못했던 20대 초반의 내 자신과 참 많이 닮아있다.
자기혐오와 연민에 빠져있었던 그 시절, 그러나 나는 지난 이 시간들을 사랑하고 싶었다.
글 이준병 / 편집 이지호
편집자의 글
편집자 본인이 무언가 크게 열망할 때, 그 마음과 닮았다고 생각되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스크리아빈 판타지이기에 이준병의 졸업 연주 실황은 반가웠다.
그의 말대로 실황 녹음은 완성도에 있어 아쉬운 부분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갈망하는 듯한 화성을 통해 토해내는 그의 자아와 그가 꿈꾸는 당신의 이상이 선율에 느껴지기에 참 아름답다고 말하고 싶다.
글 이지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