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5월 2일 오후 2시 00분
독일에 오기 전까지는 음악적인 연주와 거리가 멀었던 내게 쇼팽 스케르쵸 2번은 아름답지만 내가 친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두려워지는, 그런 낯설고 불편한 곡이었다.
그랬기에 선생님께서 내게 이 곡을 주셨을 때 표현과 쉼표의 활용에 있어서 발전을 불러일으킬 의미 있는 곡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쇼팽 스케르쵸 2번은 쇼팽의 이전 사랑이 끝나고 조르주 상드의 구애에 마음이 흔들릴 당시 쓰인 곡이다. 이 곡은 열정적인 동시에 고민이 있는 듯 하지만 사랑의 정서가 드러난다고 볼 수 있다.
곡을 처음 만났을 때 가장 고민이 되던 부분은 도입부였다. 이 곡의 전체를 관장하고 있는 b-flat minor의 근엄함과 드라마를 어떻게 풀어내야 할지 막막했다. 어떤 아이디어 없이 크게만 친다면 b-flat은 화를 내는 듯한 느낌이지만 쇼팽의 b-flat은 분노보다는 반항에 가까운 질감을 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 연주의 가장 큰 단점은 음과 음 사이에 소리가 없는 시간, 쉼표를 견디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끊임없이 빠른 음표들이 쏟아져 나오는 에튀드 같은 곡들은 잘할 수 있었고 듣는 이들도 그렇게 느껴 항상 즐거웠지만, 소나타 2악장 같이 음을 빚어내고 공간을 만들어 음이 떠다닐 시간을 주는 것은 무엇인지 알수 없었으므로 그런 곡들의 연주는 고통스러웠고 때로는 듣는 이 또한 괴롭다고 했었다.
쇼팽의 스케르쵸는 긴 음표와 적절하게 연주 되어야 하는 쉼표가 많은 곡이기에 나의 단점이 여실히 드러나기 좋았다.
지난 학부 시절, ‘피아노 교수법’ 수업에서 정완규 교수님께서는 거의 모든 수업 시간에 ‘뮤지션쉽’과 그에 필수적인 ‘듣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서 누누이 강조하셨다. 당시에는 중요하다고 하시니 중요한 일이구나 싶어 교수님의 말씀을 받아 적기만 했지 그 말씀의 의미를 이해하고 귀와 손으로 실천하지 않았다.
그 중요성에 대해서 와닿게 된 것은 독일에 나온 후 왜 들어야하며 어떻게 들어야 하는지 지금의 선생님께 배우면서부터였다.
듣기 위해 끈질기게 연습했는데, 공기 중에 흩어지는 소리의 뉘앙스를 구별하고 파악하기 위해 천천히 치는 연습에 중심을 뒀고 음이 사라지는 순간까지, 가닥을 붙잡는 심정으로 내가 내는 소리를 경청했다. 대가들의 연주에서 느껴지는 차별점을 귀로 잡아내고 그것을 나도 따라해보려는 등 소리를 빚어내려는 시도를 계속 했다.
역시나 듣는 것은 가장 옳은 해결 방법이었다. 쉼표와 공간을 음악적으로 카운트할 수 있게 되자, 스케르쵸 2번 도입부에서 왜인지 모를 조급함이 해결되었다. 그러자 정확한 시간에 음악을 채워 넣을 수 있을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내가 생각하는 음악을 녹여내기가 한결 수월해진 것이다.
소리를 내는 것만이 연주라 생각하지 않고, 쉼표는 소리가 없는 시간을 참는 곳이 아니라 다음 진행을 더 아름다울 수 있게 하는 공간이라는 것을 몸으로 느낀 지난 겨울이었다.
글 신예원 / 편집 이지호
편집자의 글
슈만은 이 스케르초를 두고 "완화, 대담함, 사랑과 경멸로 넘쳐나는" 바이런의 시에 비유했다.
글 이지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