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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바람, 돌아보는 피아노의 시간

2023년 3월 29일 오후 4시 00분
독일에서의 석사 첫 학기 개강을 앞둔 현재, 내 피아노가 시작된 순간부터 지금까지를 정리해 보고자 한다.
피아노를 칠 때 내 몸은 릴랙스와 상관이 없었다. 연습하면 할수록 팔의 상박이 딱딱하게 굳어가고 등과 어깨의 통증이 심해져 4분짜리 쇼팽 에튀드 하나도 끝까지 칠 수 없는 지경이었다.
어려움을 겪던 중 만나게 된 선생님은 지금의 나보다 어리셨는데, 한양대에서 석사과정을 지나고 있는 분이었다. 선생님께서는 당신이 제시하는 연습 방법을 그대로 따라온다면 내가 겪고 있는 신체적 문제와 입시에 가망이 있다고 말씀하셨고, 정시까지 1년밖에 남지 않았던 나는 선생님의 모든 지시와 요구를 종교처럼 따랐다.
1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여태까지 쌓아온 안 좋은 습관을 모두 걷어내기 위해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노가다와 다르지 않은 훈련을 했다. 음악에 내 생각을 넣고 내가 내는 소리를 듣는 등 그런 음악의 요소들은 모두 배제된 상태로 선생님의 음악적 계획과 테크닉만을 오롯이 받아들였다.
당시 선생님과 나의 목표는 스위치를 켜면 열심히 돌아가는 톱니바퀴처럼 내 손가락을 훨훨 돌아가게 하는 것이었다. 신체적인 것을 최대로 끌어올리는 체대 입시와 비슷한 모습이었던 것 같다. 입시 막바지가 되어서는 준비된 곡들을 선생님 앞에서 열다섯 번 런쓰루를 돌렸다.
그 작업에는 한가지 룰이 있었는데, 열네 번째 런쓰루까지 단 한 번도, 단 한음도 틀리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마지막 열다섯 번째 런쓰루에서 한음 틀린다면 다시 첫 번째 런쓰루로 돌아가는 룰이었다.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연습 방법이었고, 외줄 타는 기분으로 온 신경을 집중하곤 했다.
저런 과정을 버티니 입시는 성공적이었다. 목표로 한 대학에는 떨어졌지만, 다행히 차선책으로 생각한 학교에는 합격해 만족하며 다닐 수 있었다. 그렇게 지옥 같은 입시가 끝나고 숨통을 조이고 있던 연습이 사라지니 음악에 대한 열정이나 생각, 아니 그냥 아무런 생각이 없어졌었다.
1학년 1학기 과제곡은 고전 소나타 전 악장이었다. 친한 동기들끼리 서로의 연주를 들어주는 시간이었는데, 내가 치는 모차르트 소나타 2악장을 듣던 친구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그의 이야기는 농담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진심이 담겨 있었다.
“너처럼 아무 감정 없이, 모차르트 2악장을 그렇게 혐오스럽게 치는 사람은 처음 봤어. 단 한 순간도 아름답지 않고, 네가 좀 싫어지려고해. 1초도 더 듣고 싶지 않아.”
그의 말이 다 맞았다. 당시 녹음을 들어보면 마치 내 음악은 다 녹아버린 붕어싸만코를 입에 넣은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원래도 기계적이었던 내가, 입시 때 강도 높은 테크닉 연습을 통해 무언가 해결되는 것에 짜릿함을 느끼고, 그것에 재미가 들리자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틀리지 않는 것에 강박적으로 집착하게 되었다. 음악을 구현하는 일에 이미지나 감정은 고사하고 어떤 상상력도 어떤 사고도 작동하지 않았다.
학부를 졸업할 때까지 단순히 손가락을 돌리는 행위에 쾌감을 느끼며 그 재미로 피아노를 쳤다. 더 빠르게, 더 크게, 더 깔끔하게 치는 것에 집착했다.
반주과로 국내대학원에 진학했던 이유도 계속해서 손가락 돌리는 행위를 영위하고 싶었던 것이 가장 크다. 당시 연주 전공도 선택지에 있었지만, 반주 전공은 전문반주자로 활동하기 수월 했기에 직업적으로도 메리트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어서 계속
글 신예원 / 편집 이지호

편집자의 글

신예원은 특별히 지난 시간 음악적인 방황에 대해서 다루기를 바랐다. 자기 음악의 부족한 점에 대해 진심으로 고민하기 때문일까. 그녀는 그녀의 지난 시간에 관심이 많았다.
아직 가지고 있는 문제들을 완전히 해결하지는 못했다고 덧붙였지만, 그렇기에 앞으로 배움의 시간들을 통해 성장할 그녀와 그녀의 음악이 기대된다.
글 이지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