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월 8일 오후 2시 29분
교수님의 호령으로 잡힌 개강 첫 날의 연주는 방학으로 풀려있던 긴장감을 다시 조여주었다. 연주까지 10일 남은 시점, 되는대로 라흐마니노프를 주구장창 쳤다.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이게 소리가 더 좋네? 이 방법이 치기가 더 편하네? 음악을 어떻게 만들면 좋을까? 교수님 레슨 없이 내가 할 수 있을까? 이렇게 치면 뭐라고 하실까? 등의 생각을 하면서 곡을 정리해 나갔다.
연습을 많이 하니 날이 다가올 수록 손은 점점 잘 돌아갔지만 왜인지 음악은 심심해졌다.
저번 학기 교수님이 나에게 가장 많이 주입한 생각은 '학생처럼 치지 말고 생각을 해라'였다. 그 말씀을 붙들고 연습을 촬영해서 내 피아노를 들어보니 교수님이 하실 것 같은 말씀들이 환청처럼 머릿속에서 울렸다.
정민! 너는 또 그저 안 틀리려고, 오직 안전을 위한 연습을 했구나! 제발 생각을 해봐, 손가락이 아닌 팔을 쓰고 네 소리를 들어봐! 교수님은 곧 직접 시범을 보여주시고 이것이 음악이지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을 지으셨다.
이번 연습하는 시간들에서 느낀 것은 ‘나는 그냥 연주자 일뿐’ 이라고 더욱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전에 나에게 중요했던 것은 내가 너무 중요해서 나 자신을 보여주려 애썼다. 내 연주를 듣는 이들이 ‘와 정민이 피아노 잘 치는 구나' 라고 생각하길 바래 왔던 것 같다.
물론 그런 점도 공연예술 종사자에게 분명 필요한 기질이지만 이제는 내가 매개체로 "음악"을 들려 드려야겠다는 생각을 더 하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듣는 이에게 나를 통해 작곡가의 의도가 전해지고 그로 인해 감동과 위로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글 이정민 / 편집 이지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