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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chmaninoff moments musicaux

2022년 12월 23일 오후 4시 48분
학부 때는 라흐마니노프의 소품 또는 에튀드를 중심으로 배워 아쉬운 감이 있었는데, 지금 석사과정에서 라흐마니노프 악흥의 한 때 전곡을 공부할 수 있어 기뻤다. 본격적인 피아니스트 훈련과정을 감당하고 있는 소감이랄까.
악보를 보며 여러 연주영상을 참고했다. 라흐마니노프만의 짙은 드라마와 카리스마 있는 러시아 피아니즘을 쫓아 본다는 마음에 설레었다. 나는 특히나 악흥의 한때 6번에서 라흐마니노프가 숨겨 놓은 화성으로 인해 공간이 더 입체적이고 깊어지는 듯한 순간에 탄복했다. 정말 아름답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나는 이 곡을 온전히 구사하기 위해 넘어야 하는 허들은 많았다. 피지컬적인 이슈들, 피아니스틱 해야 하는 부분들에서 한계를 많이 느끼곤 했다.
곡에서 느껴지는 감격들과 아름다움을 듣는 이에게 그대로 가져다주려면 더욱 치밀한 표현력이 필요했다.(손 돌아가는 것에 문제없음은 당연한 일이고) 교수님께서는 표현에 있어서 라흐마니노프가 악보에 써놓은 지시어들이 연주자에게 원하는 것을 말러 심포니 2번 “부활”을 예로 들어주셨다.
손에 꼽히는 거대한 규모의 오케스트레이션과 루치니 페스티벌에서의 클라우디오 아바도 지휘로 유명한 곡, 총 연주시간 90분의 러닝타임 중 마지막 13분은 이미 어딘가 환희에 가득 찬 곳에 도달한 것 만 같은데 더욱더 깊은 곳으로 가려는 의지 같은 것이 느껴지는 황홀한 순간들로 채워져있다.
악흥의 한때의 구조는 단순하지만 화성의 움직임이 드라마틱 하다. 흔히 우리가 좋은 가요를 들으며 ‘이 부분 진짜 좋다!’라고 느끼는 것처럼 그러한 킬링 포인트가 명확하다. 그 포인트를 제대로 전달하기 위한 소리의 질을 연구했다. 화성 간의 밸런스, 볼륨의 다이내믹, 어떤 색으로 이 화성들을 칠할 것인가 등의.. 이 곡은 페달을 깔끔하게 밟기보다는schmutzig(오염된, 더러운)한 페달이 이 곡의 맛을 더욱 살린다고 생각했다.
이 곡을 공부하며 고민한 것은 교수님께서 항상 강조하시는 Für mich,즉 나를 위한 연주가 아니라 Für andere 다른 사람을 위한 연주를 하려고 노력했다. 이 음악이 나라는 매게체를 통해서 듣는 이에게 어떻게 다가갈 것인지. 내가 느끼는 그 아름다움이 어떻게 공감을 얻을 것인지 말이다.
글 이정민 / 편집 이지호

편집자의 글

피아니스트 이정민이 내게 라흐마니노프 악흥의 한 때 6번을 들려주며 했던 말이 떠오른다.
‘벅차다는 감정을 더 잘 설명하고 싶어’
이곡에 붙여진 제목에 대해서 더 생각해 보고 마음에 울리는 단어를 찾고 싶었기에 사전에 Musicaux를 검색했다. 음악, 음악의, 음악적인 등의 의미들. Musicaux는 그것의 복수 형태이다. 편한 말로 풀면 음악들의 순간.
라흐마니노프 악흥의 한때는 아름다움, 감동, 감격 등 음악이라고 불리는 것들이 가지는 핵심적인 공통점을 노래하는 듯하다.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 머물러 있고자 하는 악흥의 한때. 대상을 열망하는 마음, 흘러가지 않기를 바라 붙잡고 싶은 순간들, 그 순간을 흠모하는 마음. 불현듯 스치는 생각에 이것은 사랑의 순간과 닮았다.
글 이지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