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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린희

최린희 / Howling fragments of determination / 목재 화판에 아크릴 / 작가 후원 계좌 2754 0204 158 220 국민은행 / 80 X 60 (cm) /2025 / 1,000,000
최린희 / Night in the depths / 목재 화판에 아크릴 / 작가 후원 계좌 2754 0204 158 220 국민은행 / 80 X 60 (cm) / 2024 / 1,000,000
최린희 / Swirling fragments of determination / 목재 화판에 아크릴 / 작가 후원 계좌 2754 0204 158 220 국민은행 / 80 X 60 (cm) /2025 / 1,000,000
나는 과거의 기억에서 비롯된 트라우마적 실재에 대한 감정을 회화로 옮겨놓는 작업을 한다.
나는 예술에서, 나의 경험과 기억속에서 분열된 나의 주체인 트라우마적 실재, '공허함' 이라는 개인감정을 실재가 지시하는 상징의 의미를 다른 의미로 재부여 하며 인물형상으로 비유하고 대상화하여 표현함으로 현실과 행위에서 관람을 통해 나아가 예술적 담론으로 이끌어 가는 길을 모색하고자 한다.
초현실의 세계에서, 죽음은 육체의 파멸이 아닌 '이곳에 실재한다' 라는 '의지의 소진' 이라고 생각한다. 내면에서 떠오르는 이미지는 정신적인 실재가 드러낸 모습이다. 사람과 양초 두 실재는 비유와 은유를 통해 현실에서 작가의 의해 재해석되어 창조됨으로서 정신적인 실재는 작품으로 창조되어 관람자에게 보여진다.
평면안에서 화면 바깥의 대상(관람자)에게 비춰지며 인식하게 하려는 시도적인 입체는 환영으로서 보여지게 함으로 초현실적 세계임을 인식하게 하려는 의도이다 의식이 시공간에 매여있고 입체는 물질 사이에 에너지가 작용하는 힘으로 이루어져 있으나 그 힘은 눈에 보이지 않는 텅 빈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으니 이로서, 균열이 현실에 있음으로 실재는 텅 빈 공허의 영역에 들어와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공간 사이에 불가능한 연속성과 초현실적 상호작용의 반응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세 사건의 동시성 여부는 관람자의 시공간적 감각에 따라서 바라보는 관람자에게 달려있다. 3점의 작품에서 각각 화면안 세계의 시간이 흘렀는지에 대한 여부 또한 마찬가지다. 평면 회화속 세계의 의미는 작가의 개인적 헤테로토피아를 가리킨다. 기억속에서 분열되어 따로 떨어져 나와 회화라는 개념의 틀에 갇힌 작가의 경험을 이질적이고 폐쇄적인 강력한 시간의 파편 조각처럼 멈춰 서있는 공간을 입힌것이다.
"나는 당신이 언어로 말하는 어떤 사건의 기억을 실재 회귀하여 기억하지 못한다. 단지, 주관적 상상으로 구성된 구조적인 언어를 이미지적 상징으로 상상하고 이루어 실제의 장면을 불러와 그 속에 감춰진 의미와 감정을 느끼며 그 시공간에 잠시 고립될뿐이다."
양초의 촛불은 빛을 내기 위해서 심지를 태우며 자신의 신체(身體)로 이루어진 밀랍(蜜蠟)을 녹인다. 나는 자신의 신체를 녹이고 심지를 태우며 빛을 내는 양초에서 자기극복의 '의지'가 발현되는것을 본다. 이러한 자기극복, 내 자신의 기억을 작품의 대상에 투영하고 표현하여 감상자에게 제시하며 극복할 '의지'를 작품을 통해 전달하고자 한다.
인간은 시간이 흘러간다고 인지하며 살아간다. 모든 기억에 잠기는 회상적 시공간은 균질적인 것에 저항하는 이질적인 시공간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의 기억속 트라우마적 과거의 사건을 지금이라는 이곳 현실에서 작품으로 창조하여 즉물적 실재로 불러와 관람자에게 보여지며 헤테로토피아의 독점적 감각 사유를 요청한다.나는 과거의 기억에서 비롯된 트라우마적 실재에 대한 감정을 회화로 옮겨놓는 작업을 한다.
나는 예술에서, 나의 경험과 기억속에서 분열된 나의 주체인 트라우마적 실재, '공허함' 이라는 개인감정을 실재가 지시하는 상징의 의미를 다른 의미로 재부여 하며 인물형상으로 비유하고 대상화하여 표현함으로 현실과 행위에서 관람을 통해 나아가 예술적 담론으로 이끌어 가는 길을 모색하고자 한다.
초현실의 세계에서, 죽음은 육체의 파멸이 아닌 '이곳에 실재한다' 라는 '의지의 소진' 이라고 생각한다. 내면에서 떠오르는 이미지는 정신적인 실재가 드러낸 모습이다. 사람과 양초 두 실재는 비유와 은유를 통해 현실에서 작가의 의해 재해석되어 창조됨으로서 정신적인 실재는 작품으로 창조되어 관람자에게 보여진다.
평면안에서 화면 바깥의 대상(관람자)에게 비춰지며 인식하게 하려는 시도적인 입체는 환영으로서 보여지게 함으로 초현실적 세계임을 인식하게 하려는 의도이다 의식이 시공간에 매여있고 입체는 물질 사이에 에너지가 작용하는 힘으로 이루어져 있으나 그 힘은 눈에 보이지 않는 텅 빈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으니 이로서, 균열이 현실에 있음으로 실재는 텅 빈 공허의 영역에 들어와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공간 사이에 불가능한 연속성과 초현실적 상호작용의 반응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세 사건의 동시성 여부는 관람자의 시공간적 감각에 따라서 바라보는 관람자에게 달려있다. 3점의 작품에서 각각 화면안 세계의 시간이 흘렀는지에 대한 여부 또한 마찬가지다. 평면 회화속 세계의 의미는 작가의 개인적 헤테로토피아를 가리킨다. 기억속에서 분열되어 따로 떨어져 나와 회화라는 개념의 틀에 갇힌 작가의 경험을 이질적이고 폐쇄적인 강력한 시간의 파편 조각처럼 멈춰 서있는 공간을 입힌것이다.
"나는 당신이 언어로 말하는 어떤 사건의 기억을 실재 회귀하여 기억하지 못한다. 단지, 주관적 상상으로 구성된 구조적인 언어를 이미지적 상징으로 상상하고 이루어 실제의 장면을 불러와 그 속에 감춰진 의미와 감정을 느끼며 그 시공간에 잠시 고립될뿐이다."
양초의 촛불은 빛을 내기 위해서 심지를 태우며 자신의 신체(身體)로 이루어진 밀랍(蜜蠟)을 녹인다. 나는 자신의 신체를 녹이고 심지를 태우며 빛을 내는 양초에서 자기극복의 '의지'가 발현되는것을 본다. 이러한 자기극복, 내 자신의 기억을 작품의 대상에 투영하고 표현하여 감상자에게 제시하며 극복할 '의지'를 작품을 통해 전달하고자 한다.
인간은 시간이 흘러간다고 인지하며 살아간다. 모든 기억에 잠기는 회상적 시공간은 균질적인 것에 저항하는 이질적인 시공간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의 기억속 트라우마적 과거의 사건을 지금이라는 이곳 현실에서 작품으로 창조하여 즉물적 실재로 불러와 관람자에게 보여지며 헤테로토피아의 독점적 감각 사유를 요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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