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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일을 다 겪는 지휘자

2023년 5월 1일 오후 1시 00분
독일에는 130개의 전문악단이 있다. 악단들은 전부 공식적인 단체로 티켓을 팔아 구성원들의 생계 유지가 가능하다. 공급을 소화할 수요가 많다. 한국인으로서는 클래식을 사랑하는 많은 시민들이 신기하고 이 나라의 예술가들이 부럽기도 하다.
극장이나 심포닉 오케스트라의 연주 일정은 전 시즌의 중반 정도가 되면 나오는데 연주 일정이 빡빡해 추가적으로 지휘자가 더 필요한 경우에는 어시스턴트 지휘자를 채용하여 연주를 소화한다. 본인은 작센 극장에서 어시스턴트 지휘자로 근무하고 있다.
지휘자 김성진이 근무하는 작센 극장
어시스턴트 지휘자로 근무하며 느끼게 되는 것은 지휘자의 역량이다. 악단과 가수들이 나에게 맡겨진 시간에 어떻게 하면 더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을지 그러려면 나는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항상 생각한다.
지휘자는 음악적 역량은 물론이거니와 일 처리 능력, 대응능력, 임기응변 등의 사회적인 능력 또한 중요하다.
아래에는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와 관련된 일화다.
공연 중 남자 주인공은 지금 목 상태가 좋지 않아 더 이상 공연을 진행할 수 없겠고 취소하고 싶다는 것이다. 이미 한창 연주 중인데 말이다. 머리가 번쩍할 정도로 황당했지만, 객석에 올라가서 돈을 내고 예술을 즐기러 온 이들에게 “죄송하지만 우리 주연이 목이 안좋아서 더 공연을 할 수 없습니다. 오늘은 이만 돌아가 주십쇼”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남자 주인공을 설득하고 위로하고 회유하고 다독여 어렵게 완주한 적이 있다.
어느 소프라노는 공연 시작 전에 목 상태가 좋지 않다며 아리아 1절을 건너뛰고 싶다 말한 적이 있다. 가사가 곧 스토리의 진행인데 말이다. 목에 좋은 따뜻한 차 같은 걸 챙겨 다녀야 하는 걸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우리의 작품이 무대에 올라가 그것을 관객들에게 선보이는 작업은 늘 기쁘지만,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많은 사람이 함께하는 일이기에, 사람이 모이면 언제나 그렇듯 별의별 일이 다 생기고 황당한 일도 생기고 그러다보면 싸움이 생기고 파벌이 생기는 등 항상 분열과 그로인해 누군가는 상처를 받게 될 위험이 있다. 그리고 그런 일은 노력한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러한 이슈들을 지휘자가 컨트롤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든 상황은 필연적으로 퍼포먼스에 영향을 끼치고 결과가 좋든 좋지 않든 그 책임은 지휘자에게 있기 때문이다.
어떤 수단과 방법을 써서라도 좋은 연주를 위해 분투해야 하는 게 이 자리라고 생각한다.
통솔을 잘한다고, 음악이 좋다고만 해서 생존할 수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다. 저 멀리 떨어진 동양에서 온 눈 작은 지휘자가 자기에게 이래라저래라하는 것 자체가 싫은 연주자도 있었다.(그는 지금도 내 인사를 받지 않는다.) 때때로 이 먼 나라에서 외국인들을 통솔하며 결과를 내는 일이 버겁기도 외롭기도 하지만 나는 분명히 이 일과 공부를 사랑하기에 어려움 또한 고통스럽지는 않고 기껍게 감당하고 있다.
글 김성진 / 편집 이지호

편집자의 글

어떤 인간 또는 행동에서 그만의 고유한 가치가 느껴지는 대목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고하는 이유를 말할 때라고 생각한다.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이 아니라면 우리는 모두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쓰고 있는 것들이 있다. 많은 경우 사랑해서다.
사랑하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고하는 일은 그 인생에 서사를 갖게 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인간을 가장 고유하게 하는 것은 사랑이라는 확신에 가까운 추측은 위와 같이 그럼에도 불구하는 이유를 품은 인간들에게서 비롯된다.
글 이지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