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3월 30일 오후 9시 00분
방금 막 현대음악 연주 리허설을 마치고 온 나는 레슨에서 베토벤을 지휘해야 했다. 5분 전까지 박자라는 틀 안에서 온갖 일이 펼쳐지는 현대음악을 지휘하다가 견고한 것들이 한곳으로 모여 극적인 합을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되는 베토벤을 지휘하려니 눈썰매장에 보드를 신고 서 있는 기분이 들었다.
시작 전, 나는 선생님께 이렇게 말했다. “방금 막 현대음악 리허설을 마치고 왔어요. 갑자기 베토벤을 연주하려니 어색하네요. 생각과 영혼을 전환할 시간이 필요해요.”
내 짧은 핑계를 들은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성진, 생각을 바꿔봐. 베토벤이 그의 곡을 발표했을 당시를 상상해보자. 지금의 우리들이야 베토벤을 고전이라고 부르지만, 그의 곡이 초연될 당시에는 그것 또한 현대음악이었다는 걸 잊어서는 안 돼.
또한 후기 작품으로 갈수록 청중들은 베토벤의 음악을 이해하지 못했어. 작곡된 시대가 다르다고 해서 음악을 대하는 마음가짐이나 영혼이 바뀔 필요는 없어. 같은 영혼을 가지고 온전히 마음을 다하면 돼 성진.”
선생님과의 대화를 통해 마음속에 무언가 깨우쳐지는 기분이 들었다.
글 김성진 / 편집 이지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