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름/ Colorful Blue/oil on canvas/60.6x72.7cm/2024/280만원
윤여름/ 잠긴 새벽 /oil on canvas/53x40.9cm/2021/140만원
작가노트
구작과 근작에서는 인간관계에서 겪는 소통의 굴레와 좌절, 모순을 뫼비우스의 띠처럼 무한히 반복하고 거기서 빠져나올 수 없는 현대인을 마스크 등의 시각적 장치로서 종종 암시하여 표현하곤 했다. 이같은 그림들에서- 정적이면서도 순환구조의 푸른색조의 그림들을 나타내곤 하였다. 달콤하고 안락한 고독, 달콤한 음울함 등의 서로 반대되는 감정들이 공존하는 초상을 나타내려 했던 지난 작업에 비해, 요즈음의 작업의 흐름은 삶과 세상에 대한 긍정적 태도가 주를 이루고 있다.
신작에서 나는 음울하고 어두운 감정과 대비되는 환희의 순간들을, 푸른 색조와 대비되는 노란 빛줄기 등으로 작품에 상징화 하고 은유적으로 나타내려 했다. 이같은 은유 방식을 통해 음울함 속의 희망과 따스한 휴머니즘, 삶에 대한 찬가를 시각화하고 있다. 이는 삶에서 쓰게 되는 수많은 사회적 가면을 지칭하는 페르소나와 그 내면의 참 인격이 서로 괴리되고 유리된 것에서 느끼는 고통 및 좌절감에 대한 극복의지를 표명하는 것과 관련된다. 삶 속의 수많은 고통에도 불구하고 삶은 여전히 아름다우며, 고통스러운 세상 또한 유의미하며 아름답다고 말하고 싶은 의지를 보여주고자 한다.
고통을 겪음으로써 아름다움에 대해 깨닫는 과정, 그러한 삶에 대한 단편들이 총체된 것이 나의 작업이다.
즉, 나의 그림은 삶의 희망적 상황과 현재의 아름다운 순간들에 대한 예찬, 희망, 그리고 삶 속의 예술적 실천에 대한 흔적과 궤적으로 귀결된다. 푸르고 음울하고 때로는 어둡지만 아름다운 화면을 추구하며, 세상의 모든 존재 자체의 아름다움을 담으려 했다고 할 수 있다. 내 작업은 새벽의 어스름 속에서 빛나는 별빛처럼 서로의 인생은 희미하지만 아름답게 빛난다는 것을 고통스럽지만 인정하게 되는 과정을 담으려 한 결과이고, 한 인간이 성숙해지고 열매 맺는 과정 그 자체를 예술적 실천으로 행하고자 하는 마음이 담겨있다. 이것은 "예술이란 무엇인가", "내가 추구하는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스스로 질문하고 나름의 답을 내리려 한 노력의 결과이기도 하다.
언뜻 보기엔 단순히 대상에 대한 재현 혹은 유미주의(탐미주의)에만 머무른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타자에 대한 인정과 진정한 소통에의 의미를 전제로 한다. 타자를 나의 방식대로 규정할 때 그곳엔 또다른 나(alter-ego)가 존재한다. 타인에게 또 다른 나를 투사할 뿐인 것을 알기까지에는 많은 시간과 경험을 필요로 했다. 타인을 인정하지 못할 때 자신의 마음은 진정한 소통을 하지 못해서 공허해진다. 이러한 공허한 마음에 얼룩진 고통스러운 삶에서 비로소 눈을 돌려 자신을 돌아보고 삶의 방식에 대해 돌아보고 나서야 삶이 아름답게 보이기 시작했다.
타인의 기준에 맞추기 위해,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나아가 현대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한 사회적 가면(페르소나)를 쓰는 것은 분석심리학자 칼 융에 의하면, 인간 모두가 갖고 있는 보편적 인격적 성질의 외면이라 한다.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사회적 적응을 위해 누구나 그런 외면적 인격을 보여주고 살아간다. 그러나 그것이 과잉되었을시에 문제가 생긴다. 나는 타인에게 과하게 기준을 맞추기 위해 그러한 페르소나와 자신과의 격차를 과도하게 만들게 되었다. 순종적 성격과 사회적 압박에 대한 방어는 서로 맞물려 페르소나가 비대해지는 현상을 초래했다. 이런 페르소나들 자체에 대한 표현과 가장된 여성성 및 방어적 모습에 대한 성찰이 전작들의 주요 관심사였다면, 최근의 작품들은 참된 자신을 찾아가기 위한 노력과 삶에 대한 긍정적 인정이 긍정적 색채와 터치 등으로 옮겨간 것이다.
타인은 그저 그 자신의 방식대로, 성격대로 존재할 뿐이었음을 인지하기 시작하기 위해서는 자신에 대한 끊임없는 성찰이 요구되었다.
타인은 나 자신을 타인의 기준에 끼워맞춰야 하는 대상도 아니며, 그 자체로 사람들과 삶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증거인 것이다. 나의 작업은 이러한 과정에 대한 끊임없는 시도와 타자와 자신과 자신의 페르소나에 대한 성찰의 시각적 결과물인 것이다.
작품에 드러나는 나를 둘러싼 환경(circumstances)과 재조립된 자연 혹은 도시 이미지, 빛나는 볕뉘들은 삶에 대한 단편들의 조립이며, 거시적으로는 삶에 대한 긍정의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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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