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4월 14일 오전 11시 00분
지휘자는 본인이 원하는 음악을 단원들에게 분명히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확실하게 보여주는 것에 집중해서인지 내 결과물을 돌아볼 때면 작곡가가 구현한 본연의 아름다움을 드러내기보다는 내가 그 작품에 의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어필하고자 하는, 원숙하지 못함이 눈에 밟혔다.
선생님들께서는 이제는 내가 가진 에너지를 내면에서 운용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해주셨다. 에너지의 운용이란 레슨에서 수도 없이 들어온 Geduld(인내, 참을성)이라는 단어와 연관 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나의 역할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연주자란, 음악이라는 대상을 쓰인 그대로 아름답게 하는 것이라 배워온 듯하다. 그 작업에는 인내가 필요하다. 인내에는 나를 내려놓음이 필요하다.
진리는 언제나 간단히 뻔한 말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실천하기에는 불편하고 어렵다.
조금씩 어렴풋이 알게 되어 가는 내 공부의 방향성이 진리로 여겨지는 가르침들과 상통하다 생각 될 때, 배움의 맛을 알아간다.
글 김성진 / 편집 이지호
편집자의 글
언젠가 선생님께서 나의 나의 6 klavierstücke op. 118을 들으시다 연주를 멈추게 하시고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브람스는 그런 사람 아니야. 그는 주머니에 사탕을 넣어 다니며 공원에서 아이들을 마주친다면 그것을 나눠주는 것을 좋아하는, 그런 따뜻한 내면이 있는 내성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해. 네가 치는 것은 너무나 너로 가득하다.”
사랑하는 일에는 두 가지의 방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열정적으로 대상에 나를 투영 할 것인지, 대상을 더 아름답게 하는 일에 내가 요소가 될 것인지.
본인은 아직 후자의 방법으로 사랑하는 일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지만 대상을 조작하지 아니하고 나를 투영하지 아니하는 것의 시작은, 한발 물러나 그의 원함과 그대로의 모습은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것이라 생각한다.
스스로를 속여 사랑이라 여기는 욕심을 덜어내는, Geduld가 필요하다.
글 이지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