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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과 예술의 순수, 그 사이 분투

2023년 5월 4일 오후 3시 00분
공연 시작전 긴장을 풀고 주의를 환기하기 위해 행하는 나만의 루틴이 있다. 연주를 위해 확인해야 할 것들이 모두 확인됐다면, 고개를 돌려 오케스트라 피트를 구경하는 관객들과 가벼운 인사를 나누는 것이다.
시간을 내어 우리의 작업을 즐기러 와준 그들에게 감사와 최선을 다하겠다는 마음을 전하기 위해 밝게 웃으며 인사를 건낸다.
그중 가장 즐거울 때를 꼽자면 아이들과 눈 맞춰 인사하는 때다. 그들은 키가 작아 얼굴만 내놓고 신기한 눈빛으로 우리를 구경한다. 손을 들어 그들에게 인사할 때 아이들의 순수한 눈을 바라보고 있자면 왜인지 울컥하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최근 들어 주변에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음악가들이 생활고로 인해 음악을 포기하고자 하는 경우가 종종있다. 현대사회, 스스로 생각하는 컴퓨터가 출범한 현재에 순수예술을 업으로 삼는 다는 것은 어쩌면 역행하는 삶이라 볼 수 있지 않은가.
그 고달픔은 정직한 성직자와 닮은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가치가 있다고 믿는 것을 위해 삶을 드리는 모습이 말이다.
해결되지 않는 한마디, 마음에 들지 않는 한 음을 위해 하루 종일의 시간을 들이기도 하고, 한계의 문턱에서 좌절의 고배를 마시면서도 계속 작업을 이어간다. 아무것도 보장되지 않을 수 있다는걸 알고 있음에도 생활 중에 연습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음악을 내려놓는 이들의 선택을 이해한다. 어쩌면 그들은 보다 현실적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예술은 인간의 삶에 있어 분명한 가치와 의미가 있지만 그것이 모든 걸 해결해 주지는 않으니까.
아이들의 맑은 눈망울에 내 눈을 맞추면 그들의 순수함에서 아름다움을 느낀다. 그러다 보면 마음속, 내 생활과 생존의 얼룩을 느낀다. 내게 허락된 이 작업에 저들과 같은 순수한 마음이 필요함을 느낀다. 음악을 사랑하게 된 그 첫마음의 순수함처럼 말이다.
삶의 생존과 예술의 순수성 가운데서 언제나 분투할 수밖에 없는 모든 예술가를 존경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지쳐있다면 잠시나마 스스로를 위로하고 대견해하길 바라며.
가치를 위해 고통을 안고 있다면 성인들이 전하는 진리에 닿아있는 것이 아니겠냐고 나와 당신들에게 전하고 싶다.
글 김성진 / 편집 이지호

편집자의 글

악성이라 일컬어지는 베토벤도 생활고는 피할 수 없었다. 그는 18세기 음악가 중 귀족에게 가장 많은 후원을 받은 음악가였지만 합스부르크 왕가가 전쟁에서 패하자, 베토벤은 더 이상 그들로부터의 수혜를 기대할 수 없었다.
당시 그는 난청과 티푸스 등 여러 질병을 앓고 있었고, 포도막염으로 추정되는 눈병에도 걸려 반쯤 실명 상태였다. 이만한 설상가상이 또 있을까.
밑에는 당시 그의 심정을 추측해 볼 수 있는 ‘하일리겐슈타트 유서’ 중 일부다. 빈곤과 병마 속에서도 스스로 부여한 사명을 붙드는 의지를 볼 수 있다. 그는 이후 인류의 유산이라 여겨지는 ‘운명 교향곡’, ‘합창 교향곡’등을 작곡하였다.
하일리겐슈타트 유서의 일부
나를 붙드는 것은 예술, 바로 그것뿐이었다. 내 속에서 느껴지는 움트는 모든 것을 내놓기 전에 이 세상을 떠난다는 것이 불가능해 보인다.
중략
아 사람들아, 언젠가 당신들이 이 글을 읽게 된다면 그때는 당신들이 내게 정당하지 않았다는 것을 생각하시오. 또한 불행한 사람은 나 자신을 닮았으며 자연이 내린 모든 장애에도 불구하고 예술가와 위인의 대열에 끼기 위해 모든 것을 다했던 사람을 보면서 위안을 삼도록…
글 이지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