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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과정에서 살아남기

2023년 4월 13일 오전 11시 00분
박사과정 이수를 위한 독주회 그리고 스케줄러를 가득 채우는 리허설, 연주, 반주 일정들. 문득 도대체 내가 한 학기에 몇 곡을 소화하고 있는지 궁금해져 분한 마음에 세어보았다. 곡의 개수로는 20곡이 넘었고 연주 시간은 6시간에 육박했다.
반주 조교로 일하기 시작한 첫 번째 해에는 별다른 요령 없이 쏟아지는 악보들을 온몸으로 맞아가며 소화했다. 그때는 지금의 나보다 두 살이나 젊었기에 20대의 파이팅으로 버틸 수 있었지만, 이제는 이모의 나이인 30대가 되어 나만의 루틴, 요령이 있어야 그런대로 뻗지 않고 살아있을 수가 있다. 밑에는 본인의 방법이다.
학기 말에 있을 나의 독주회 프로그램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학기 중반까지는 손에 넣어 어느 정도는 암보가 가능한 상황이어야 한다. 그러면 조금 여유로운 마음으로 다음 학기 독주회 프로그램을 천천히 익힐 수 있는 시간이 생긴다.
박사과정 이수 독주회
벌써 다음 독주회 프로그램 준비가 웬 말이냐 할 수 있겠다. 본인은 위에 언급한 것처럼 독주회와 학업만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반주조교로도 일하고 있기 때문에 학기 중반 부터는 쏟아지는 반주 일정을 소화해야 한다.
보통 한 학기에 나에게 배정되는 반주량은 반주 리싸이틀 4개와 학부생 실기 시험 반주다. 그 외에도 학교 밖에서 이뤄지는 아이들 티칭과 합창단 반주, 입시생 반주 일도 적지 않기에 모든 상황과 갑자기 터지는 이벤트들에 유연히 대응하려면 일단은 가장 중요한 나의 독주회 프로그램들부터 안전지대에 놓아두어야 한다.
그렇기에 금 학기 독주회 프로그램을 일차적으로 암보해두고 학기 중반부터는 반주 일정과 외부 일정들을 소화해가며 다음 학기 프로그램을 천천히 숙지한다.
반주보의 양이 절대적으로 많아 모든 곡을 내 솔로곡처럼 성심을 다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효율적인 반주를 추구하는데, 모든 음을 다 정확하게 친다기보다는 꼭 표현해줘야 하는 음들을 더 돋보이게 연주하는 등 나름의 reduction을 하는 것이다.
바순 독주회 김진주의 반주
또한 오케스트라 사운드를 묘사하려 노력한다. 특히나 콘체르토 반주의 경우 string, woodwind, brass들이 가진 register/pitch에 따라 그것들의 특징을 피아노로 구현할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면 플루트 같은 high pitch의 목관 악기의 경우 주로 오른손의 16분음표를 강조해 주어야 하는 반면, basoon의 경우 그 소리처럼 따뜻하고 중후한 소리를 구현하지만 너무 무겁지는 않게, 오른손 보다 왼손의 베이스를 더 강조해줘 솔리스트와 함께 입체적인 음악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간단히 박사과정의 한 학기를 생존하는 요령과 나의 반주 컨셉을 소개했다. 석사과정과 비교해보자면 박사과정은 끊임없이 돌아가는 공장처럼 계속해서 공부해야한다.
외부연주 - Steinway Piano Gallery of Detroit & Arts Academy
학사와 석사과정에서는 큰 이벤트 하나가 끝난다면 하루이틀 여유를 가질 수도 있지 않은가. 박사과정은 하루하루가 작지 않은 이벤트들로 이루어져 있기에 그냥 쉬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다.
어떻게 한 번은 해도 두 번은 절대 못 할 풍성하고 보람찬 박사과정이다.
글 김진주 / 편집 이지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