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노트
작가는 자연이라는 거대한 담론아래 다양한 이미지들이 양산되는 현실속에서, 나와 가깝고 인연 있는 대상을 중심으로 작업을 해 왔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자연의 완전함을 숭배하고 물의 흐름에서 반복적 패턴을 알아내고 다양한 시도를 그림까지 적용시킨 것처럼 배우고 볼 거리 가득한 자연은 인간에게 끊임없는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스님으로 살면서 위로와 정감을 전하는 작가로 내가 자연에서 받은 감성을 온전히 감상자에게 전하고 싶었다. 길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들풀이나 꽃을 보며 잠시 걸음을 멈추고 기분전환을 하거나 무더위에 지쳐 하늘을 보다 우연히 발견한 나무그늘 아래 쉬어 갈 여유가 생길 수 있듯이 별거 아니라고 무심코 지나쳤던 것들이 특별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나무 한 그루, 꽃 한 송이가 사람의 마음을 잡아 이끄는 기분 좋은 경험을 우리는 종종하게 된다.
태어난 곳이 산과 바다가 있는 지역이라 집에 들어온 새를 보고 놀라거나 어릴 적 개나 고슴도치를 키워 본 경험이 있다. 그래서 자연 속 생태에 익숙한 동ㆍ식물을 자주 쉽게 접할 수 있었다. 그러한 인연이 지금 내 그림 속에 자연스럽게 반영된다.
인간과 자연의 교류가 순수한 인간으로 살아갈 파동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순수한 인간의 심성을 지키고 자연의 규칙대로 사는 삶, 그것이 자연과 인간을 지키는 자연스러운 삶의 흐름이다. 생명체의 근원인 땅속에 물을 놓고 그 위에 꽃도 나무도 자란다. 물을 통해 생동하고 생장하는 식물과 하늘이 만나 상호작용한다.
어떤 대상과 경계를 정해 놓지 않고 자연의 구성 중에 물을 중심으로 작업을 했다. 공간에 배치된 물과 물속 세상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들을 통해 반복된 율동성과 조화로움을 추구한다. 하나의 집약된 에너지가 생동하고 흘러가며 영속적인 감각을 나타내는 느낌과 단조로운 리듬들이 모여 한 곡의 노래를 만들어 가는 과정들을 풀어놓았다. 예전에 그린 작업들보다는 힘이 빠져 말랑하고 색감도 더 연해졌으나 대상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뀜에 따라 주체와 객체가 자연스럽게 조우한다.
하나의 대상을 시시각각 살피며 작업을 하는 작가들이 있는 데, 나는 현실과 상상을 결합시키는 작업을 좋아한다. 삶이 희망적인 것은 꿈을 꾸고 나아갈 이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기에 보이는 현실 너머에 이상 한 스푼을 보탠다. 금방 시들어 갈 나약한 꽃 한 송이일지라도 지금이 찬란하고 빛나는 최고의 시절이라고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지금 이 순간의 소중함을 말해 주고 싶다. 비록 지나고 보면 좋은 시절이 짧았을 지라도, 지금 만큼 중요한 건 없다. 오늘의 내가 한 일들이 내일의 나를 만든다는 당연한 사실을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집 앞 정원을 가꾸는 일에도 인간의 노력과 정성이 필요하듯이 내 작업 속 자연과 사람은 하나의 에너지로 조우한다. 신화적 존재처럼 자연속에 등장하거나 혹은 새나 사람의 형태로 순수하고 열정적이며 빛나는 색감으로 처리된다.
소품을 통해 유화나 다른 물감들을 익히며 주제는평소에 좋아하던 자연과 사람이 중심이 된다. 소녀가 자연속을 뛰어놀며 어우러진 상황을 연출하게 되는 데, 녹색이 주는 안정감과 보라색이 주는 서정성과 신비로운 분위기는 자연의 정원을 노닐며 인간과 자연의 한계를 뛰어넘어 조화로운 세계로 나아간다. 젊음, 따뜻함, 희망의 에너지를 사람과 공간의 관계 속에서 보여주며 자연과 사람의 이상향이자 행복한 순간을 담았다.
산에 자주 다니고, 산책을 좋아하며, 한 때는 다양한 공간에서 사람들의 모습을 관찰하면서 작업을 하다가 산에서 살다 도시로 옮겨가며 이 절, 저 절로 내 삶의 거처를 옮기는 게 일상인 나에게 환경의 변화는 자연스런 작업의 변화로 이어졌다.
작가는 유화의 다양한 기법을 연구하며 무의식 속에서 의식적 흐름을 찾아내어 마치 장판에 낀 얼룩을 보고 사람의 형상을 찾아내듯이 발견하고 찾아내는 형태와 긁고 여러 번 칠하고 시도해서 얻어 낸 마티에르 같은 기법적 연구를 좋아한다. 그래서 애초에 구상을 하고 색을 어떻게 칠할지 연구했던 방향이 새롭게 변형되기 쉽다. 이러한 변형은 캔버스속에서 자연스러움과 미적 안정감을 추구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지가 녹아져 있다. 정형적인 대상이나 형태보다 여러 번의 시도로 붓질한 캔버스에 긁고 긁어내어 그리고 색의 연관성을 끄집어 내어 하나의 에너지를 형성한다.
자연속에서 신화적 인간을 창조하고 그러한 인간을 작업속에 배치시켜 무엇이 우리를 이끌고 그러한 힘이 어디에서 왔는지 영적이고 간접적인 요소가 된다.
작가는 스님으로 사람들과 공감하고 따뜻하게 다가갈 방편으로 그림을 그리게 되면서 그림과 스님생활을 함께 바라보는 관계로 나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