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 KIM / this is THE story_2404_3-1 / Mixed media on canvas / 24.2x33.4 / 2024 / 880,000
작가노트
나는 불행을 불행의 통념에서 떼어놓는다. 불행은 흔히들 생각하는 아주 좋지 못한 상태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행이라는 운과 복에 아직 닿지 못한 상태일 뿐이다. 나의 작품은 “행이 없는” 불행의 상태가 인간에게 디폴트 값이라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우리들 삶이 행에 가깝든 불행에 가깝든, 그 모양새는 그저 자연스러운 “그러함”일 뿐이다. 삶들 간의 행과 불행의 교차는 조물주의 편애에 의한 것이 아니므로, 행운과 행복만이 마땅하지도, 고난이 전혀 부당하지도 않다. 모든 삶의 모양새를 우리는 제대로 보거나 함부로 판단할 수 없으므로, 개별 존재들의 이야기는 따로 보아져야 한다.
나는 회화의 가장 기초재료라 여겨지는 흑연으로 돌아간다. 흑연이 캔버스에 남기는 흔적은 나의 컨트롤에 온전히 기대지 않으며 작업 조건에 따라 다양하게 변화하므로, 나는 나의 의지를 재료에 강요하지 않는 방식으로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닌 불행의 모습을 구현한다.
그렇게 형성된 불행의 사이사이, 재료가 허락한 틈새에 알맞게 빛을 닮은 색으로 채워 나가는 나의 작품 행위는, 우리가 인생을 살아내는 방법, 즉 맞닥뜨린 불행의 앞, 행이 부재하는 곳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하는 것,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것과 같다. 이 빛을 닮은 색들은 어떤 눈높이와 방향에서 보는지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데, 이 역시 우리가 행과 불행을 바라보는 관점의 문제와 유사하다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흑연의 다양한 변주에 응답함으로써 삶의 이야기들을 구현하는 나의 작품을, 나는 네러티브 추상이라 하겠다.
누구나 살기 힘들다는 지금 현재를 사는 관람자들이 이번 전시를 통해, 삶과 행불행에 대한 또다른 태도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누구의 것과도 같지 않은 모든 존재들의 개별적 이야기를 여러 각도에서 따로 보아주기를 나는 바란다.